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의 정치 감각과 정치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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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부

‘우리 MB가 달라졌어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시쳇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민주당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국회를 찾아가 야당 지도부를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인준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그 전에는 의원 전원에게 조속한 인준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정치’를 한 것이다. 야당이 반대의 이유로 내세운 주장에 대한 타협안을 대통령이 직접 들고 와서 제안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 제안에 대한 거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집권 초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거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공을 세운’ 의원들에게 전화로 격려하던 이 대통령과는 명백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한·미 FTA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강한 의지 때문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야 ‘정치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분야에 대해 ‘내가 해 봐서 잘 아는데’라는 말을 즐겨 하던 이 대통령이지만, 유독 정치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아꼈다. 그의 정치 이력은 1년여 정도의 국회의원 경험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오히려 성공한 기업인, 유능한 행정가라는 비정치적 영역에서의 업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이 대통령과 국민 모두를 힘들게 한 것은 그가 정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집권 4년을 보내는 시점에서야 이 대통령은 정치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정치력에 대한 검증 없이 정치권 외부의 ‘참신한 인물’에 대해 관심을 보인 일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02년 대선에서의 정몽준 후보일 것이다. 당시 정 후보는 3선 의원이었지만 유권자들에게 그는 정치인이기보다는 ‘대한축구협회장’이었다. 실제로 그의 모습은 국회 의사당보다 국가대표 간 A매치가 열리는 축구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에 오르게 되면서, 그가 어떤 정치인인지 검증해 보지도 않은 채, 정몽준은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권 후보가 되었다.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한때 정치적으로 주목받았던 기업인 출신 문국현 의원도 마찬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안철수 교수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라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안 교수는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다. 물론 안 교수가 내년 대선과 관련해 아직까지 한마디도 언급한 것은 없지만, 오랫동안 대세론을 유지해 온 ‘천하의 박근혜’를 ‘한방에 훅 가게’ 할 수 있을 만큼의 폭발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대권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재산의 사회 환원 선언과 함께 그는 한 걸음 더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다가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안 교수는 정치 지도자가 되기에도 많은 장점을 가졌다. 의사·기업인·교수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공공성에 대한 그의 헌신은 학연·지연으로 똘똘 뭉쳐 끼리끼리의 이익을 좇는 이들의 모습과 큰 대비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는 또 하나의 전문 영역이다. 정치적 경력이 전무한 그가 과연 어떤 리더십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이 대통령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의문이다. 물론 경험해 봐야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다. 청춘콘서트라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 소통 방식, ‘삼성 동물원’과 같은 정치적 수사,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 절제된 언론에의 노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행한 재산의 사회 환원 선언, 그리고 내년으로 예정된 저서의 출간 계획 등 지금까지 보여준 안 교수의 모습은 정치를 모른다고 말하기 적절치 않을 정도로 간단치 않은 정치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는 모든 걸 혼자서 자신의 계획대로 차곡차곡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사건건 자기에 반대하고 깎아 내리려는 상대방이 존재하지만, 좋든 싫든 그 반대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토닥거리며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적 감각보다 정치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몇 달 후의 한국 정치를 예상하기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치인 안철수’의 등장은 그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그때쯤이면 그의 정치력에 대한 혹독한 검증은 불가피할 것 같다. 국민들로서도 집권한 이후에야 정치를 배우고 익히는 대통령을 또다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