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TPP는 일본의 새로운 ‘흑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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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하기로 선언했다. 미국·호주·베트남·페루에다 일본까지 가세한 TPP가 실현되면 엄청난 파장을 낳게 된다. 경제 규모 1위와 3위가 포함된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노다 총리의 결단은 한국에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EU FTA에 이어 한·미 FTA까지 맺으면 전 세계 수출 시장의 40%와 관세 없는 교역이 가능해진다. 반면 일본은 그 절반에 그치는 현실이다. 일본 언론들이 우리의 FTA 협상을 실시간 중계하며 일본의 TPP 참여를 강도 높게 주문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TPP는 ‘잃어버린 20년’을 수출로 돌파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또 자신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고립을 자초한 ‘갈라파고스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위한 승부수나 다름없다. 물론 일본의 TPP 참여가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한·일 FTA 협상 실패에서 보듯 치명적 걸림돌인 농업으로 인해 과연 TPP 협상을 완주해낼지 의문이다. 일본의 전농(全農)은 “TPP에 가입하면 농업은 다 죽는다”며 압박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 안에도 “협상을 해보되 말이 안 통하면 그만두자”는 중도하차론(中道下車論)이 만만치 않다.

 일본은 외부 충격을 통해 내부 혁신을 성공시킨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1853년 도쿄 앞바다에 나타난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을 계기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패전 이후에는 ‘제2의 흑선’인 맥아더 사령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꽃을 피웠다. 이런 역사적 데자뷰로 인해 TPP를 ‘제3의 흑선’으로 접근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미 일본은 일·EU FTA 협상 속도를 올리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이 TPP까지 참여하면 한국의 FTA 선점효과는 희석돼 버린다. 이런 역사적 격변기에 야당들은 한·미 FTA 비준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역사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