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은폐 관련 대화 녹음삭제는 단순사고” 워터게이트 오리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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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1913~94·사진) 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삭제된 18분30초 분량의 녹음테이프’에 대해 끝까지 발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삭제 부분에는 닉슨이 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 보좌관과 사건 은폐를 논의했는지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 산하 ‘닉슨도서관’은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한 지 10개월 후인 75년 6월 이틀에 걸쳐 총 11시간 동안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대배심 증언을 한 기록을 10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닉슨은 삭제된 녹음 테이프에 대해 “단순사고였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닉슨은 사라진 대화 내용을 말해 달라는 요구에 역정을 내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테이프 얘기는 그만 하자”고 말했다. 역사학자 스탠리 커틀러는 “닉슨은 대배심 증언에서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 갔다”며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사면초가에 몰린 닉슨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해리 로빈슨 홀더먼 수석보좌관과 사건 은폐에 대해 논의했다. 특별검사는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둘 사이의 대화가 담긴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제출된 테이프는 18분30초가량이 삭제돼 있었다. 당시 닉슨의 비서는 자신이 녹음기 버튼을 잘못 눌렀다고 진술했지만 의도적 삭제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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