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지휘자 길버트 공연 조건은 “순두부·김치찌개·소주 … 다 사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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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앨런 길버트(左), 미셸 김(右)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2009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 뉴욕필하모닉의 수장에 오른 앨런 길버트(Allan Gilbert)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동그래진 ‘넘버3’ 미셸 김(한국명 김미경) 부악장에게 그는 대뜸 말했다. “앞으로 불고기·순두부·만두·김치찌개·잡채에 소주까지 다 사준다고 약속해요!”

 지난 4월 김 부악장은 지휘자 길버트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가난한 음악영재를 발굴해 키워주는 ‘더블스톱재단’ 기금 마련 공연에 나와 달라는 ‘청탁’이었다. 잠자코 설명을 들은 그는 “음악가에게 악기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안다”며 농담으로 수락했다. 그는 오랜만에 직접 비올라를 잡기로 했다.

 길버트는 ‘뉴욕필 키즈’로 불린다. 30년 가까이 뉴욕필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한 부모 덕에 뉴욕필 연습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길버트가 참여하자 뉴욕필 수석 첼리스트 카터 브레이도 나섰다. 그는 올 뉴욕필 정기연주회에서 첼로 독주를 맡은 스타다. 김 부악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뉴욕필 트리오’가 만들어졌다.

반주자를 찾던 김 부악장은 지난 9월 뉴욕을 방문한 세계적인 한국계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한국명 양희원)을 떠올렸다. 더블스톱재단의 취지를 들은 그는 즉석에서 뉴욕필 트리오의 반주는 물론 독주도 맡기로 했다. 여기다 무보수 이사직까지 수락했다.

 막판엔 행운까지 겹쳤다.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윈튼 마살리스가 김 부악장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그가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세계적인 재즈밴드인 링컨센터 재즈 5중주단이 쿠바 공연을 마치고 뉴욕에 모인다는 것이었다. 마살리스의 지원사격 덕에 이들도 합류했다.

초호화 멤버는 14일(현지시간) 뉴욕 콜럼비아대 밀러극장 무대에 선다. 더블스톱재단 기금 마련 공연으론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다. 첫 공연 때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칭류첸에 이어 이번엔 서부에서 떠오르는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포터(14)도 뉴욕에 데뷔한다.

김 부악장은 “더블스톱은 바이올린 현 두 줄을 동시에 울리는 연주기법”이라며 “꿈나무 영재에게 악기를 빌려주는 것은 물론 멘토까지 해주자는 취지로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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