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0억 선물투자 전담한 역술인 김원홍이 ‘키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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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8일 밤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에서 14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을 마친 뒤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채 동이 트기도 전인 8일 오전 6시30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에 압수수색영장을 앞세운 검사와 수사관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순식간에 이 빌딩에 있는 SK홀딩스와 SK가스 사무실로 들어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 각종 서류들을 확보했다. 같은 시각,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사옥과 경기 분당의 SK C&C빌딩 등 SK와 관련된 10여 곳에도 검찰 수사관들이 진입했다. 압수수색은 14시간 동안 진행됐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SK그룹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순간이었다. 이날 압수수색 소식에 유럽 출장 중이던 최태원(51) SK 회장이 급거 귀국했다.

 검찰의 SK 수사는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 지난 4월 최 회장이 1000억원대의 선물투자 손실을 입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회사 자금 전용 의혹이 불거지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내사에 착수했다. 한 달 뒤 글로웍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된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 대표 김준홍(45)씨의 계좌에서 SK와 관련된 미심쩍은 자금 흐름이 포착됐고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가 자금 추적에 들어갔다.

 2개 부서에서 별도로 진행되던 수사는 지난 8월 말 이중희 금조3부장이 특수1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특수1부로 통합 재배당됐다. 특수1부는 관련 자료들을 검토한 끝에 수사대상을 네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는 선물투자 의혹. 검찰은 최 회장의 선물투자액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5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이 자금의 출처이자 최 회장을 대리해 선물투자를 전담한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이자 SK해운 전 고문인 김원홍(50)씨 계좌를 역으로 추적해 부적절한 자금의 유입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중국 상하이에서 스프링인베스트라는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경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것 외에는 출신 대학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둘째는 베넥스에 대한 SK계열사 투자자금 횡령 의혹이다. SK텔레콤 등 SK계열사들은 2008년 말부터 베넥스 등이 운용하는 벤처 펀드들에 모두 2800억원을 투자했다. 검찰은 베넥스 대표인 김씨가 SK 임원 출신이라는 점 등을 중시해 이 자금의 투자처를 추적한 결과 이 중 최소 992억원이 최재원 부회장 등의 개인 용도로 전용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셋째는 거액의 대출금 상환을 위해 회사 자금을 빼냈는지 여부다. 최 회장은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차명대출을 포함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째 수사 대상은 탈세 등 기타 의혹들이다. 검찰은 이들 네 가지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 왔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이날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과 최 부회장 등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도 이희완(63)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의 SK 세무조사 무마 와 관련, 서울지방국세청 등을 압수수색했다.

글=박진석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선물(先物)투자=미래의 일정 시점에 물건이나 주식을 특정한 가격에 인수하기로 약정하는 파생상품 투자. 적은 금액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도 있는 반면 훨씬 큰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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