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를 실패하게 만드는 시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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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20면

10월 이후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반등하며 곡식이 무르익는 풍성한 가을 정취를 보여준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필자처럼 주가 바닥에서 주식을 충분히 담지 못해 늦가을을 즐기지 못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고민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보인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이 이번 가을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유는 지난 8월 주식시장 급락을 야기했던 경기 우려가 여전하다고 믿고 현금 비중을 높게 가져가거나 주식을 사더라도 경기 방어주 위주로 매수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가을 증시 반등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무엇이 주식 전문가들을 실패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이번 반등의 이유인지에 대해 반추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식시장 반등의 첫째 이유는 시장 참여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너무 많이 팔았다는 것이다. 지난 8월에 단시간에 코스피지수가 27% 가까이 급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당하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지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됐다. 경기 민감주 위주로 매도가 집중되면서 대형 우량주 가운데 주가가 50% 가까이 하락한 경우도 나타났다. 시장 균형이 깨지고 과매도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10월 들어 유럽 정상회담에서 재정위기 해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미국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는 등 주식시장에 우호적인 뉴스가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주식을 이미 많이 팔아놓은 기관투자가들이 경기 민감주 위주로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할 찬스를 놓치게 된 것이다.

둘째 이유는 경기가 급격히 침체로 빠질 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기준선 50을 밑돌지는 않고 있다. 소비심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준까지 하락했지만, 실제 개인소비 지표는 전월 대비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실물 지표가 급격히 나빠지는 모습은 아니다.

물가 상승세도 한 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경기가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최악의 국면으로 진행될 것이란 우려도 완화된 상황이다. 8월 주식시장이 글로벌 경기에 대한 우려를 지나치게 반영한 것과 반대 현상으로 경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반등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주식시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장기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저금리와 유동성의 힘을 간과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 상황과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상황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금리인데, 2007년 미국 연방정부 목표금리는 최고 5.25%였지만 2011년 금리는 제로 수준이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해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경기 둔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자산가격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상승한 후 경기침체로 진입하며 33달러로 77% 하락했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 둔화에서 유가는 최고 114달러에서 현재 94달러로 17% 하락하는 데 그쳤다. 주식을 제외한 자산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풍부한 유동성이 우호적인 뉴스와 함께 주식시장에 다시 유입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이번 베어마켓 랠리가 더 큰 폭으로 반등하고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필자는 글로벌 증시가 여전히 베어마켓 국면이라고 판단한다. 아직까지 글로벌 경기 상황이 회복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를 찾을 수 없고, 유럽 재정위기가 이대로 봉합되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글로벌 투자자들처럼 경기 둔화 국면에서 업황 불안에 노출되는 기업보다, 설령 업황이 나빠지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파워를 가지고 성장을 지속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상품 가격에 연동되거나 경기에 민감한 기업에 대한 투자는 경기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일 때 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필자는 올해 2월이 경기 순환상 꼭지였던 점을 감안해 내년 3, 4월 정도면 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록 이번 상승 랠리에서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시장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까지 경기 둔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추세적 상승을 이어가긴 어렵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다시 기회를 줄 것으로 믿고 다음 저점을 기대해 본다.



박건영 2004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들어간 후 간판 펀드인 디스커버리펀드를 최고 수익률 펀드로 만들어 이름을 날렸다. 2009년 브레인투자자문을 세워 투자자문사 전성시대를 열었다.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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