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느라 혼기 놓쳤다” 40세 남성 15%가 미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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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방배동의 한 볼링장. 인터넷카페 ‘3040 볼링클럽’ 운영자인 주영삼(45·회사원)씨가 35명의 회원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함께 볼링을 하고 사람도 사귀는 모임이다. 이날 참석한 25명의 남성 중 23명이 40대일 정도로 40대 싱글 남성이 주축이다. 주씨는 “시기를 놓쳐 결혼을 못 했거나 독신 생활을 즐기는 또래 남자들이 최근 늘었다”며 “우리 모임뿐 아니라 다른 동호회에 가도 40대 남성이 많다”고 했다.

 주씨의 경우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반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31세 때 외환위기가 오면서 사업에 실패한 것이다. 생활이 어려워져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어렵게 재취업을 했지만 결혼할 여유가 없었다. 주씨는 “요즘엔 결혼한 친구들이 육아나 교육비 등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동호회 활동을 하면 다양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데 결혼 생활 대신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주씨처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40대 증가율이 두드러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5년 1.4%였던 40세 남성 중 미혼 비율이 2010년엔 14.8%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40세 여성 중 미혼 비율이 1.1%에서 7%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나 많다.

이는 40세 이상으로 넘어가면 더 격차가 벌어지는데 45세의 남성 중 미혼 비율이 85년에는 0.2%였던 반면 2010년에는 7.7%로 늘었다. 서울시 통계에도 40대 남성 1인가구가 7만4630가구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40대 남성을 겨냥한 싱글모임도 급증하고 있다. 한 인터넷 포털 카페엔 40대 싱글과 관련된 것만 372개에 달한다. 동호회도 스포츠·와인·캠핑 등 종류별로 다양하다. 여성과의 만남이 목적인 것도 있고, 순수하게 취미생활을 위해 모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40대 미혼 남성 증가 이유를 국내 경제의 흐름에서 찾고 있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 교수는 “지금 40대는 2차 베이비붐 세대로, 사회 진출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쟁체제에 내몰린 세대”라며 “98년 이후 계속된 고용불안과 양극화 현상 등이 그들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결혼관을 갖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싱글 남성인 임준규(40·회사원)씨는 대학 졸업 때 외환위기로 인턴사원 생활을 하다 정식 채용되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는 카드대란이 와서 취업을 포기하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임씨는 “33세에 취업을 하고 보니 어린 동기들이랑 경쟁하며 바둥대다 혼기를 놓쳤다”고 했다.

 ‘또래효과’ 때문에 결혼을 안 한다는 분석도 있다. 회사원 최진석(42)씨는 사내 밴드를 결성해 공연 연습을 하고 2주에 한 번은 산악자전거 동호회 모임에 참석한다. 그는 “나 자신을 위한 투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허전할 때는 다른 싱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고 했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는 “많은 사람이 늦게 결혼하기 때문에 주변에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또래들이 많아졌다”며 “뒤처졌다는 소외감이나 결혼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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