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효시, 남상, 권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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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총이 나오기 이전까지 전쟁에서 활은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는 주인공 남이가 쏘는 ‘아기살’이 나온다. ‘조선의 병기’라 불린 아기살은 일반 화살에 비해 길이가 3분의 1에 불과한 작고 짧은 화살이다. 통아(筒兒)라고 하는 가느다란 나무통에 넣어서 쏜다. 날쌔고 촉이 날카로워 관통력이 뛰어나다.

 화살에는 ‘우는살’도 있다. 이 ‘우는살’이 바로 ‘효시(嚆矢)’다. 嚆는 ‘울릴 효’, 矢는 ‘화살 시’다. 살 끝에 빈 깍지를 달아 붙인 것으로 화살이 날아가면서 공기에 부딪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는살이라고 한다. 전쟁을 시작할 때 ‘효시’를 먼저 쏘아 올렸다는 데서 유래해 ‘효시’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맨 처음을 의미하게 됐다.

 사물의 처음이나 기원을 이르는 말로 ‘남상(濫觴)’도 있다. 濫은 ‘넘칠 람’, 觴은 ‘(술)잔 상’으로 ‘남상’은 술잔을 띄울 정도의 적은 물을 뜻한다. 곧, 거대한 배를 띄울 수 있는 양쯔강 같은 큰 강물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술잔 하나 띄울 만한 적은 물에서 시작됐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권여(權輿)’도 사물의 시초(始初)를 뜻하는 단어다. 權은 ‘저울(추) 권’, 輿는 ‘수레 여’로 ‘권여’는 저울대와 수레 바탕이라는 뜻이다. 저울을 만들 때는 저울대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는 수레 바탕부터 만든다는 데서 유래한다.

 ‘효시’ ‘남상’ ‘권여’는 모두 사물이나 현상의 맨 처음이나 시초를 가리킨다. 비슷한 말로 ‘비조(鼻祖)’ ‘시조(始祖)’ ‘원조(元祖)’가 있는데, 이 단어들은 사람에게도 쓰인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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