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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는 삶보다 평온한 죽음을” 1400명 연명 치료 거부 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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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 6층 은명대강당. 주부 김희숙(63·서울 양천구)씨는 서류에 적힌 문항을 꼼꼼히 읽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명을 했다. 증인으로 나온 변호사도 서류에 함께 서명했다.

 ‘나의 건강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치료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게 되면, 담당 의료진과 가족들이 이 사전의료의향서에 기록된 나의 뜻을 존중해 주기 바랍니다’.

 앞으로 김씨는 본인이 의사를 밝힐 수 없는 뇌사 상태에 빠지거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이날 밝힌 의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다. 김씨는 “가족·의료진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자연스럽고 존엄한 죽음을 맞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보건복지부 지정)는 이날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를 주제로 연명(延命) 치료 중단과 관련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첫 세미나를 시작한 이후 광주·대전·울산·전주·강릉·부산·대구 등을 거쳐 10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본지 2010년 12월 16일자 19면>

 이 기간 동안 전국에서 1400여 명이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를 작성했다. 이날 서울에서도 전문직 은퇴 노인들의 모임인 골든에이지포럼 회원과 ‘웰다잉(품위 있는 죽음)’ 운동을 벌여온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회원, 일반인 등 100여 명이 의향서를 냈다. ▶뇌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있거나 질병 말기, 노화로 건강 회복이 불가능하고 ▶단기간 내에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을 때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의사표시였다. 사본은 센터에서 보관하되 언제든 지정 대리인의 요청으로 병원에 환자의 의사를 알려주게 된다.

 한편 센터가 전국에서 접수된 의향서 1400부의 사본을 분석한 결과 여성(64.4%)이 남성(35.6%)보다 많이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70대(602명), 60대(399명), 50대(201명) 순이었다.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 손명세 센터장(연세대 보건대학원장)은 “환자는 병원이나 가족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병원이나 가족 입장에서는 환자의 의사를 몰라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전용 홈페이지(사전의료의향서.kr)에서도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박유미 기자

◆연명 치료=장기간 의식 불명이나 뇌사 상태에 있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 행위. 사실상 의식 회복이 불가능한데도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 존엄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에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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