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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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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기택
시인

이제 늘 놀랄 준비를 해 두고 있는 게 좋겠다.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놀랄 만한 일들은 늘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산이 무너져 흙과 돌과 나무가 도로와 아파트를 덮친다. 예고도 없이 전국에서 정전 사태가 일어난다. 저축은행이 갑자기 문을 닫고 피 같은 돈을 찾지 못한 서민들은 잠긴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을 쉰다. 교사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하고도 잘못을 피해자에게 씌우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잘 지낸다.

 이 사건들은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벌어진 것일까? 이성복 시인은 이런 현상을 “어느 날 갑자기 벽돌을 나르던 조랑말이 왼쪽 뒷다리를/ 삐고 과로한 운전수는 달리는 핸들 앞에서 졸도한다.”(‘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고 꼬집었다. 조랑말이 다리가 삐고 운전자가 운전 중에 졸도하는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 숨겨져 있다. 견디기 힘든 노동과 과로가 계속된다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육체적·정신적 훼손은 계속될 것이고 사고의 위험성은 커지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결과가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생긴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모든 불행은 ‘우연’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을 제 속에 안고 있다. 필연은 불감증과 관습, 마비, 고정관념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복 시인은 우리 사회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진단했다.

 영화 ‘도가니’를 본 한 지인은 수십 년 전 학창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반에서 늘 1등을 하던 똑똑한 급우가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방황하던 끝에 결국은 양공주가 되고 말았단다. 그러나 그 교사는 나중에 장학사가 되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사이에 필연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깊이 감춰진다. 겉으로 드러난 불행은 개인의 탓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 된다. “피해자는 있는데 처벌받는 이는 없다”고 거마 대학생 다단계 사건을 수사한 송파경찰서 경감은 말했다. 전국적인 정전 사태도 발전량과 사용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잘못된 정보로 업무를 해온 낡은 관행이 빚은 결과였다. 모두가 눈이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편리한 습관과 마비가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불행을 싫어한다. 그러나 잠재적인 불행은 어디에나 있다. 불행은 현상을 가리는 두터운 관습과 온갖 귀찮은 것을 꺼리는 마비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충분히 편안한데 왜 불안과 두려움을 사서 겪는단 말인가. 그러나 불행은 반드시 신호와 징조를 동반하여 사전에 경고를 한다. 관심만 가진다면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선택과 안이한 태도와 무반성적인 관습 때문에 그 경고를 무시하거나 못 알아볼 뿐이다.

 현대시에는 위로와 평안을 주는 아름다운 서정시 못지않게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시가 많다. 그래서 불만을 갖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깨려고 해도 우리 의식과 사회 구조를 덮고 있는 두꺼운 관습과 마비가 깨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보는 시인들이 몹시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