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업계가 자성해야 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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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큰 충돌 없이 무사히 끝났다. 일부 세력이 미국 월가 시위를 그대로 본떠 수입했다는 점에서 파급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젊은 세대의 취업난은 풀릴 줄 모른다. 도처에 인화물질이 널려 있어 언제 다시 반(反)금융업계 시위가 폭발할지 모른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객관적으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업계만 따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 금융회사들의 노동생산성은 제조업과 비슷한데 평균 연봉은 1인당 총소득(GNI)의 2.1배나 된다. 반면 ‘금융강국’이라는 미국은 금융회사의 평균 임금이 1인당 GNI 대비 0.95로 오히려 낮다. 이러니 한국 금융업계가 제 몫만 챙긴다는 소리가 나온다. 어려울 때는 공적자금을 받고, 돈을 벌면 자기들끼리 연봉·배당 잔치를 벌인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시중은행들의 수수료 이익은 사상 최대인 2조2567억원이나 된다.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수입도 4조95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8.6%나 늘었다. 지난해부터 두 차례나 가맹점 수수료를 내렸지만 오히려 수수료 수입은 늘어나는 기(奇)현상을 보인 것이다. 지금까지 금융업계는 설비투자 비용 회수를 위해 수수료 인하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수료를 수익기반이 아니라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됐다.

 금융 당국도 같은 식구라고 금융회사를 두둔할 일이 아니다. 보너스·배당잔치에 앞서 대손충당금부터 더 많이 쌓도록 유도해야 금융위기 때 공적자금 동원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책당국이 앞장서서 금융회사들 간의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그래야 서민들이 부담하는 카드 수수료 같은 금융비용이 내려가고, 금융업계의 과도한 임금수준을 자연스럽게 낮추는 물꼬를 틀 수 있다. 금융업계를 향해 급속히 쌓여 가는 사회적 반감을 외면해선 안 된다. 금융업계의 자성(自省)을 통해 이런 압력을 미리 누그러뜨리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