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든 오바마, 우래옥 음식 모두 비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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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한국 음식점 ‘우래옥’에 정장을 한 남성 7명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백악관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힌 인솔 책임자는 “오늘 저녁 중요한 분들 10명이 이곳에서 식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식당 측은 10명 인원에 적당한 맨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둘러본 남성은 옆의 두 방 예약을 취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어 “저녁이 진행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제공할 수 있는 음식 메뉴를 만들어 보여 달라”고 했다. 오후 7시5분 식당에 들어선 사람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MB) 대통령 일행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며 오바마는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때마침 우래옥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손님들은 뜻밖의 귀빈 오바마와 MB 일행이 들어서자 박수와 환호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두 사람과 뒤따르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은 미소로 답했다. 그러나 누구도 오바마 일행의 방 근처엔 접근할 수 없었다. 곧바로 백악관 경호원과 청와대 경호원이 식당 내 곳곳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식사에 열중해야 했다.

 식당 측은 당초 백악관 측에 한정식 코스요리를 메뉴로 제시했다. 전복죽과 삼색전, 구절말이와 갈비구이 등 한국 요리를 한껏 뽐낼 수 있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한글과 영문이 동시에 적혀 있는 메뉴판을 직접 살피던 오바마가 불고기를 골랐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나는 불고기를 먹겠다. 불고기는 가장 유명한 한국 고유의 요리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국 요리에 익숙한 듯 새우튀김과 야채구이도 골랐다. 그러자 MB도 불고기를 선택했다. 우래옥에서 식사한 적이 있는 클린턴은 야채비빔밥을 시켰다. 오바마는 음료수로 아이스티를, MB는 보스턴에서 생산된 새뮤얼 애덤스 맥주 한 잔을 즐겼다.

 오바마와 MB 일행이 주문한 음식은 주방에 배치돼 있던 한·미 경호원들의 철저한 감시 속에 만들어졌다. 특히 한국 음식인 점을 감안해 미국 경호원 대신 청와대에서 나온 한국 경호원이 미리 음식 맛을 보고 이상 여부를 확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젓가락을 사용하며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즐겼다. 과일과 수정과를 포함해 음식을 모두 비웠으며 참석자 10명 중 가장 많이 먹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식사는 1시간50분가량 진행됐다. 오후 8시55분 식당을 나서던 오바마는 박수 치는 백인 손님과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백악관이 지불해야 할 이날 식사비용은 팁을 포함해 약 500달러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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