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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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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진홍
논설위원

# “태어나 보니 섬이었다.” 태어난 섬은 작았다. 하나 섬이 작을수록 바다는 더 큰 법! 그는 거기서 지느러미를 키웠고, 바다 건너 뭍으로 나아갈 꿈을 키웠다. 어느 날이었다. 소리라고는 파도와 새와 뱃고동이 전부였던 그에게 요상한 소리가 들렸다. 섬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집의 육지로 나가 공부하던 딸이 친다는 피아노 소리였다. 풍금은 보았지만 피아노는 구경조차 해본 적 없던 섬마을 소년에게 그 소리는 낯설다 못해 싫었다. 어쩌면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부잣집 딸에 대한 동경이 괜한 심술을 부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신문배달을 했던 섬마을 소년은 훗날 뭍으로 나와 용케 기자가 됐고 편집국장, 주필, 사장까지 했다. 그는 세계음악기행, 세계문학기행이란 이름 아래 온 세계를 휘젓고 다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의 바다를 주유한 후 ‘김·성·우’라는 이름 석 자를 갖고 다시 섬으로 돌아온 그는 다녔던 초등학교 자리에 배를 본뜬 집을 짓고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 /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던/ 만선(滿船)의 귀선(歸船)/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 소리 없이라도/ … / 빈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갓 결혼한 피아니스트가 그녀의 영화 찍는 것을 구경하러 따라간 곳도 섬이었다. 갓 서른의 젊은 피아니스트는 그 섬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신비로운 원시적 매혹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후 그는 온 세계를 다니며 연주여행을 했지만 늘 그 섬이 그리웠다. 마침내 환갑도 지나 65세의 중후하고 연륜 깊은 피아니스트로 단련된 그는 아내와 함께 다시 그 섬을 찾았다. 이번엔 자신의 콘서트를 열기 위해…. 작열하던 태양이 뉘엿뉘엿 저물 즈음 온몸 가득 석양을 받으며 거룻배를 타고 등장한 이는 피아노의 시인 ‘백·건·우’였다. 그는 붉은 석양이 삼킬 듯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머리는 바닷바람에 흩날렸고, 그의 타건은 알알이 던져져 여울이 되고 파도가 됐다. 피아노 선율이 만든 파도는 섬마을 선창에 모인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피아노 소리를 요괴한 음향이라 여겼던 섬마을 소년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 ‘수국’이란 이름의 어여삐 자란 늦둥이 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아름다웠다. 때마침 흘러나온 곡은 클로디 드뷔시의 ‘기쁨의 섬’이었다.

 # 그 섬의 이름은 ‘욕지(欲知)’다. “연화세계를 알고자 하거든 그 처음과 끝을 세존(부처)께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는 불도의 화두대로 연화도, 욕지도, 두미도, 문도, 세존도가 통영 앞바다 위에 떠 있고 그 중심에 ‘알고자 하거든’의 섬, 욕지도가 있다. 김성우와 백건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섬에 갔다. 마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정현종 시인의 마법 같은 시어에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 섬마을 소년은 더 이상 피아노 소리와 다투지 않는다. 내심 부잣집의 위세소리 같고 얼굴조차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그 집 딸의 도도한 목소리 같던 피아노 소리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부끄러울 만큼 작은 방에 살았기에 떠밀리듯 너른 바다로 나아가 놀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실은 벼락 같은 축복이었음을 뒤늦게 알았기에, 그리고 부잣집 딸보다 훨씬 더 어여삐 자란 딸을 언제든 바라볼 수 있기에 그는 더 이상 세상의 헛헛한 것과 다투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피아노의 시인이 삼킬 듯한 석양 아래 바닷새의 하모니와 바닷바람의 앙상블로 펼친 ‘바다 위의 피아노’ 소리가 여든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섬마을 소년 같은 그의 마음속에 다툼과 갈등과 분노가 아닌 어머니 품 같은 평화와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으로 새 둥지를 틀었던 것이리라. 누구든 진짜 인생을 살면 세상의 온갖 불협화음 속에서도 내 인생의 소리는 기어이 들리고 만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