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석연 사퇴는 보수의 실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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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석연 변호사가 28일 사실상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했다. 범(汎)보수 시민후보로 추대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이 변호사는 낮은 지지율에 ‘충격 받았다’며, 그를 추대한 보수 시민단체와의 이견도 ‘사퇴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 ‘과대평가했다’는 말과 함께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개인적으론 깔끔한 마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범보수 시민후보의 갑작스러운 출마선언과 사퇴는 보수진영의 무기력을 고발하는 한 편의 드라마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석연 변호사의 출마선언은 그 계기부터 상궤(常軌)를 벗어난 일이었다. 이 변호사를 불러일으킨 곳은 한나라당이었다. 물론 1차 계기는 안철수 바람이었다. 시장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만으로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교수는 돌연 박원순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당황한 한나라당은 박 변호사에 맞설 ‘제2의 박원순’을 찾았다. 당내에 엄연히 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대안을 찾은 것이 이 변호사다.

 당연히 이 변호사는 박원순 변호사와 같은 자발성과 시민사회 내부의 대표성을 지니지 못했다. 보수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여 공동추대하는 모양새는 갖추었지만 그들 사이의 이견은 해소되지 못했다. 핵심 쟁점인 무상급식에 대해 이 변호사는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신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며 사퇴를 공식화했다. 한나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정치적 쇼에는 관심이 없다’는 냉소를 보냈다.

 과연 보수단체들이 이석연이란 인물을 자신들의 대표로 내세우면서 그 정체성을 제대로 따져보았는지, 진정 보수의 대표라는 내부 공감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제대로 된 보수의 대표라면 당당히 후보로 등록해 보수의 가치를 외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어야 한다. 정치력이 있는 후보였다면 내부의 이견을 한목소리로 조율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면 한나라당 후보와의 여권 단일화를 이룸으로써 보수의 승리에 기여해야 했다. 지지율은 그때 판단할 문제다. 출발도 않고 지지율이 낮음을 탓하는 것은 핑계다.

 결국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중도 포기로 끝난 셈이다. 보수 시민사회의 실패다. 원인 제공자인 한나라당의 실패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보수의 중심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보수 시민단체의 도전과 경고를 받았다. 한나라당이 구상했던 여권 통합의 흥행마저 무산됐다.

 이 변호사의 퇴장은 박원순 변호사와 너무나 대조된다. 박 변호사는 안철수 교수의 ‘무조건 양보와 지지’를 받아낸 데 이어 진보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선거운동자금 38억원을 단숨에 모금했다. 박 변호사의 승승장구는 결국 한나라당의 위기다. 나경원 후보를 뽑아놓고도 적전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은 정녕 위기불감증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