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이버 강의'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진정한 사이버 강의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연세대 가상교육 지원센터장을 맡고있는 황상민(38.심리학과)교수는 국내 대학의 사이버 강의가 ''사이비'' 강의로 변질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나타냈다. 그가 우려하는 ''사이비'' 강의란 교수가 과제를 던져주고 학생이 수동적으로 풀이하는 형식의 전근대적 교수방식을 온라인 상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려는 강의를 뜻한다.

황교수는 "교육에 대한 기본 패러다임이 선행돼야 사이버 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실강의를 온라인상에서 그대로 재현하려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동영상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며 "통신인프라에대한 불만도 이런 환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 상에서 영화수준의 동영상 강의를 원한다면 차라리 강의 비디오테이프를 사는 편이 현실적으로 낫다는 게그의 주장이다.

그는 "''방송국 모델''의 사이버 강의는 ''TV과외''와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어 "사이버 강의는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학습자료와 과제를 뿌려준다는 뜻이 아닌데도 그렇게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사이버 강의를 논의할 때 통신인프라와 교육콘텐츠를 문제로 들게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정작 중요한 것은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를 느낄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며 "인터넷 시대의 강의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아니라 학생의 참여를 유도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황교수는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고 토론을 자발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 필요한통신인프라는 현재 구축돼있는 인터넷망을 이용한 e-메일과 채팅룸 정도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필요한 자료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도록 만드는 것이 사이버강의에서교수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정보통신기술로 통신인프라만 해결하면 완벽한 사이버 강의가 된다는 기계적인 생각은 기술 만능주의에서 나온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하고 "교육의 기본패러다임은 인간의 관계에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사이버 강의가 가장 잘 이뤄진다고 평가되는 피닉스대학의 경우 국내와 비슷한 통신인프라에 ''넷스케이프''등 범용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통 사이버 교재 제작계획에 대한 물음에 "사이버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격"이라고 비판하며 ''교수별 자료축적 모델''을 제시했다. 교육콘텐츠는 교과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수별, 수업별 다양성을 존중해 교수와학생이 같이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학생의 질문도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교수들이 불평해야 할 것은 통신인프라나 콘텐츠 부족보다 차라리 교수의과중한 수업부담일 것"이라고 요구했다. 황교수가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사이버 공간의 심리''강좌의 수강생 80명에게서 받은 질문이 2개월만에 500개가 넘어서고 있고질문 하나에 평균 3개의 의견이 다른 학생들로부터 나온다.''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사이버 강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는 그는 교수가 이런 질문과 토론에 집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교수의 수업부담은 지금보다 적어져야한다고 말한다.

황교수는 "누구나 제한없이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사이버 교육의매력"이라며 "교수와 학생 모두 인터넷 시대에 맞는 교육에 대한 근본 패러다임을전환해야 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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