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뒤로 사라진 '인터넷 신화'

중앙일보

입력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았다.’

그간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던 골드뱅크의 경영권 분쟁이 마침내 김진호 前사장이 퇴임하고 유신종 사장이 단일대표를 맡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김진호 전 사장은 지난 4월7일 골드뱅크 이사회 결정을 통해 대표이사에서 해임됐다. 골드뱅크 수석 부사장 출신인 유신종 이지오스 사장이 친위주주들을 규합, 지난 3월20일 “골드뱅크 주주총회에서 이 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지 3주 만이다.

이사회 결의 직후 일본으로 출국한 김전사장은 지난 4월9일 골드뱅크 사내통신망을 통해 ‘골드뱅크 임직원 여러분께’라는 사임의 글을 띄웠다. 김전사장은 “사람은 기다릴 때와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며 “사임을 결심하는 이 순간도 직원들과 땀 흘렸던 보람된 순간들로 가슴이 저려 온다”고 현재의 심경을 밝혔다.

또한 그는 “이제는 성장한 골드뱅크에서 창업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가진, 저보다 더 뛰어난 경영능력을 가진 사람이 책임지고 경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됐다”며 사임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이질적인 경영문화 통합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며 “저에게 아직 에너지가 있을 때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해 새로운 사업 구상이 있음을 내비쳤다.

김전사장은 현재 일본에서 귀국해 칩거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도 끊은 채 마음을 정리하고 있으며 앞날에 대한 구상도 하고 있는 것으로 한 측근은 전했다. 김전사장의 향후 행보는 어떤 것일까.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빠른 시간내에 김전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개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골드뱅크 사장실의 심종원 부속실장은 “김전사장은 현재 마음의 동요는 많이 가라앉은 상태”라며 “항상 새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은 만큼 곧 다른 일을 시작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전사장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자신이 사장 재임기간중 진행했던 일본 진출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으로 떠나 현지에서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도 오는 6월 설립예정으로 알려진 ‘골드뱅크재팬’사업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많다. 사실 관련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김전사장의 퇴진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전사장이 지난 3월24일 주총에서 유사장과 막판 대타협을 맺을 때 이미 퇴진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전사장은 경영권을 넘겨 주는 대신 향후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어느 정도 ''실리''를 챙기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관측에는 골드뱅크의 정관에 ‘단독대표제’가 명기돼 있다는 점도 근거로 작용했다. 이를 타협한 내용대로 ‘공동대표제’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변경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전사장은 명예퇴진에 대한 마음을 이미 굳힌 상태에서 분쟁을 최대한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쪽으로 사태를 종결지으려 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편 골드뱅크에서는 유사장이 그간 준비해 오던 분사 문제가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골드뱅크가 본연의 인터넷 비즈니스보다는 업체들에 대한 투자수익올리기에 급급했다면, 앞으로의 골드뱅크는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이라는 명확한 사업 아이템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이 유사장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유사장와 함께 골드뱅크의 구조개선을 맡고 있는 김상우 부사장(ICG사장)이 골드뱅크로부터 분사하는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를 맡아 새 경영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사장은 지주회사격인 골드뱅크의 사장을 맡아 전체적인 기획과 총괄분야를 맡을 계획.

김상우 부사장은 “현재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골드뱅크의 사업다각화로 인해 비즈니스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골드뱅크의 정체성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경우 이미 선발주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골드뱅크가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다는 견해가 많다.

한때 한국 인터넷 기업의 ‘신화’의 주인공으로, 또한 인터넷 ‘거품’의 주인공으로 찬사와 질시를 한꺼번에 받던 대표 ‘골뱅이’ 김전사장은 이제 무대 뒤로 물러났지만, 그가 남긴 골드뱅크는 다시 한 번 주목받을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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