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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자유민주주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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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자 해방정국의 핵심 지도자였던 백범 김구(1876~1949)의 정치이념을 주목할 만하다. 47년 12월 출간된 자서전 『백범일지』에 ‘나의 소원’이 실려 있다. 백범의 정치사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47년이라면 한반도가 세계적 이데올로기 냉전(冷戰)의 최전선이 되었던 때다. 대한민국 건국 직전이기도 하다. 백범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의 소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백범의 사상에는 오늘 우리 사회가 이념적 혼란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에 벤치마킹할 지혜가 담겨 있다. 오늘 우리의 고민을 60여 년 앞서 미리 해놓았다는 점에서 좀 길어도 그의 생각을 인용해 본다.

 백범의 자유사상은 민주주의 이념과 연결됐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 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 미국은 이러한 독재국(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스 독일)에 비겨서는 심히 통일이 무력한 것 같고 일의 진행이 느린 듯하여도, 그 결과로 보건대 가장 큰 힘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의 효과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그대로 직역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련의 독재적인 민주주의에 대하여 미국의 언론 자유적인 민주주의를 비교하여서 그 가치를 판단하였을 뿐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기초로 한 자를 취한다는 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두 요소다. 백범이 자유를 주창했다고 하여 평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백범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도 참고할 만하다. 정치·교육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경제면에서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48년 건국 당시 마련된 대한민국 헌법도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 백범 정신은 임시정부 이래 대한민국 헌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민주를 근간으로 하면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특별히 중시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의 차이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그런 논란이 다른 곳도 아닌 새로 만들 초·중·고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방향을 놓고 벌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정치와 교육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에 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흐름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민족 통일을 염원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백범의 지혜를 배울 순 없을까. 백범이 원했던 ‘아름다운 나라’를 64년이 지난 오늘 다시 꿈꿔 본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