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에게’는 사람·동물에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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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길 위에서 길을 잃고/어디로 가는지 길에게 길을 물으니/먼 곳을 가리키며/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되묻는다/잃어버린 것은 길이 아니라/마음을 잃은 것/길은 먼 곳에서 모이고/마음은 발밑으로 흩어지는 것/길은 외길로 가고/나는 두리번거린다’

 안병찬 님의 시 ‘길에게 길을 묻다’다. 삶의 과정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어느 쪽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길에게 길을 물어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에게’처럼 어떤 행동을 일으키거나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는 조사에 ‘~에’와 ‘~에게’가 있다. 대부분 사람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에게’를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합격 사실을 알렸다” “재수없이 개에게 물렸다” 등처럼 사람이나 동물인 경우에만 ‘에게’를 써야 한다. “대기업에 상생을 요구했다” “이틀마다 꽃에 물을 줘라” 등과 같이 사람·동물이 아닐 때엔 ‘에’를 사용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계약 사실을 회사에게 알렸다” 등처럼 ‘에’를 써야 할 자리에 ‘~에게’를 사용해선 안 된다. 다만 ‘길에게 길을 묻다’나 ‘꽃에게 말을 거는 남자’ 등처럼 사물을 의인화할 때는 사람·동물이 아니어도 ‘~에게’를 쓸 수 있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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