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기수문화 관행 깨기 정착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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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의 오랜 폐습으로 지적돼온 기수(期數)문화 관행이 변화될 조짐이다. 지난 16일 권재진 법무부 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체제의 고위 간부급 인사가 단행된 이후 우려됐던 줄사퇴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검장 승진 누락으로 동기의 지휘를 받는 자리나 후배가 있던 한직으로 발령을 받아 사의 표명이 주목됐던 검사장급 간부 4명이 모두 검찰에 남아 오늘 새 근무지로 부임한다. 권 장관과 한 총장이 새로운 검찰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남아달라고 설득했고, 당사자들이 기꺼이 수용한 결과라고 한다. 기수문화에 따른 동반 사퇴 관행을 깨려는 인사 실험이 일단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간 검찰에선 사법연수원 동기나 후배가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면 선배·동기들이 동반 사퇴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동기의 지휘권에 힘을 실어주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의 소산일 뿐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조직 이기주의적인 잘못된 행태요, 시대착오적인 의리 문화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 검찰 간부들이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는 건 검찰 조직과 국가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검사장 한 명을 배출하려면 20년이 넘는 시간과 20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고 한다. 동반 퇴진 관행은 이런 검찰 간부들의 경험과 연륜을 한꺼번에 사장(死藏)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검찰 스스로 전문성과 수사력 약화를 자초하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다.

 한 검찰총장은 이달 초 인사청문회에서 “시대가 바뀐 만큼 검찰의 기수문화도 바뀔 때가 됐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이번 검찰 간부 인사는 시작일 뿐이다. 검찰총장 동기들도 검찰에 남는 모습을 보이는 단계까지 기수문화 관행 깨기가 정착돼야 한다. 이번만 해도 한 총장 임명을 계기로 동기 5명이 모두 검찰을 떠나지 않았는가. 검사가 소신과 사명감을 갖고 정년까지도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검찰 조직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