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브라운의 뷰티 다이어리] 마음 깊이 담아 온 모로코의 빛깔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4면

바비 브라운
‘바비브라운’ 창업자

휴가철이 돌아왔다. 나는 남편, 세 아들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지만 왠지 여름휴가는 누군가에게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것 같아 더 기대되고 설렌다. 이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2009년 여름 남편과 함께 간 모로코다. 자전거를 타고 즐길 모로코 여행은 오랫동안 내 기억의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여러분에게 모로코 여행을 소개하며 나도 다시 모로코로 떠난다.

 모로코에서의 첫날 아침, 나와 남편은 투어 리더를 만나 12마일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아름다운 팔메리 루트를 따라 야자수와 부겐빌레아 꽃, 낙타들을 지나 모로코 남부 도시 마라케시를 통과했다. 첫날 첫 식사는 당연히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이 예의! 우리는 모로코 전통 음식으로 차린 맛있는 뷔페로 점심을 먹었다.

 나는 여행 다닐 때 꼭 그 나라 시장을 빼놓지 않고 다닌다. 시장은 그 나라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로를 헤매듯 우리는 시장길을 누볐다. 무늬가 선명한 옷감과 카펫, 놋쇠와 쇠 장식, 악기, 보석과 도자기, 그리고 멋지게 늘어선 향신료, 파우더, 향수들. 나는 이런 시장 분위기에 기분이 들떴고 생동감 있고 감각적인 시장 풍경에 자연스레 영감까지 떠올랐다.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이날 오후 마라케시의 거대한 중앙광장 ‘플레이스 오브 더 데드’를 볼 수 있었던 것. 뱀 부리는 사람과 예언자, 약초상, 이야기꾼, 음악가, 광대로 가득 찬 그곳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이곳의 풍경은 지금까지도 내게 놀라운 경험으로 남아 있다.

 다음날 아침은 올리브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 타메슬롯으로 향했다. 올리브유는 내가 사랑하는 제품 중 하나. 그곳에서 나는 전통적인 올리브 압축 방식과 올리브유 생산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아틀라스 산맥의 멋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를레 뒤락 호숫가에서 소풍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평화로운 시골길을 지나 하이 아틀라스 산맥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다. 굽이굽이 펼쳐지는 경관들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라케시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룩.

 셋째 날은 임릴 밸리를 지나 걷기도 하고 중간 중간 노새를 타고 베르베르 마을로 하이킹을 했다. 지역 주민의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의 해맑고 밝은 얼굴, 짙고 빨갛게 물든 입술을 보며 가을 시즌 새로운 립 컬러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산에 작별을 고하고 모로코의 해안 평야를 가로지르던 넷째 날. 나와 남편은 서쪽으로 트레킹을 계속했다. 점점 대서양에 다가가자 뚜렷한 자연의 변화가 나타났다. 완곡하게 굽이진 언덕, 하얗게 회반죽을 칠한 주택들 그리고 잔잔한 바닷바람은 방금 지나온 사막과 산, 카스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미즈미즈에서부터 항구 도시 에사위라까지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닌 우리는 캣 스티븐스와 지미 헨드릭스 같은 뮤지션들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 도시의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다녔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며 뮤지션들이 이곳을 사랑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섯째 날도 자전거를 타고 해변 마을 물레 부자르크톤과 윈드 서핑지로 인기가 많은 시디 카우키 비치로 갔다. 이곳에서 염소들이 아르간 나무의 높은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니 식욕도 마구 솟았다. 물레 부자르크톤에 도착해서는 해변에서 지금껏 먹어본 것 중 가장 싱싱한 해산물과 야채로 식사를 즐겼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시골길을 지나며 편안하게 자전거 투어를 즐겼다. 아르간 오일 제품을 생산하는 한 여성협동조합도 둘러보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과 이야기도 나눴다. 그들은 친절하게 아르간 열매 추출 및 압축 과정을 보여주고 땅콩버터 맛이 나는 아믈루와 오일을 함유한 음식도 맛보게 해주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모로코는 내게 역동적인 경험과 꿈같은 시간과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엄청나게 풍부한 흙빛 색상과 우리가 여행했던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지배하던 색의 조합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아주 강렬한 빛깔의 옷감 더미에서부터 향신료가 들어 있는 삼베 주머니까지 말이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로코에서 보고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마라케시 시장의 기억과 향기를 2011년 가을 컬렉션으로 선보이게 됐다. 이름하여 ‘마라케시 시크’. 짙은 색소로 가득 찬 항아리와 아름답게 빛이 바랜 터키 융단의 강렬한 컬러를 담은 컬렉션으로, 짙은 색깔이지만 누구나 쉽게 생기있으면서도 시크한 가을 룩을 연출할 수 있다.

바비 브라운 ‘바비브라운’ 창업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