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이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 … 눈앞에 보여주는 추상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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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추상미술과 유토피아
윤난지 지음, 한길아트
536쪽, 3만원
 

기원전부터 미술은 끊임없이 자연을 모방해 왔다. 3차원의 자연을, 2차 평면 위에 어떻게 더 그럴싸하게 그릴 것인가. 미술은 거기에 도전했다. 그러니 추상미술을 두고 “도대체 뭘 그렸담”하고 막막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다운 예술” “내용이 아니라 형태를 보라.” 추상미술의 존재 이유는 이런 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플라톤도 『필레부스(Philebus)』에서 그랬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선적인 것과 곡선적인 것, 그리고 그것을 컴퍼스와 자, 직각자 등으로 구성해 만든 평면적이거나 입체적인 형태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것처럼 상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항상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답다.”

 이 오래된 관념을 ‘추상미술’이라는 네 글자로 흡수하고, 그것을 또한 눈앞에 구체적 시각물로 보여준 것은 20세기다.

 미술 역시 사회적 산물이다. 추상미술은, 엄밀히 말해 ‘추상미술’이라는 이름은 20세기의 발명품이다. 지난 20여 년 ‘추상미술’과 ‘유토피아’라는 두 개의 화두를 붙잡아온 윤난지(58)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과학에 대한 신념, 물질문화의 반영, 개인주의 이상향 등 오늘날의 세계가 추상미술을 필요로 했다고 설명한다. 러시아 혁명기의 아방가르드 미술이 그랬고,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종주국이 된 미국서 나온 추상 표현주의가 그랬다.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지만 인간이 끝없이 열망해 온 이상의 세계다.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역시 세상에 없는 관념적 형태로 눈앞에 보여준 것, 그것이 추상미술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새처럼 나는 꿈을 꾸듯이, 그리고 그 꿈이 결코 사라진 적 없듯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도 추상 충동도 사라지지 않을 것”(510쪽)이라고 말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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