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책 선택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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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12일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투표를 앞두고 “더 이상 오해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라고 밝혔다. 그동안 오 시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주민투표를 정치 캠페인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등 일부 비판과 의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논란과 시비를 불식한다는 차원에서 오 시장의 불출마 선언은 환영할 만하다. 무상급식 투표는 특정인의 정치적 이해에 좌우돼선 안 되는 정책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뽑힌 대표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대의(代議) 민주주의에서 주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직접민주주의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번 주민투표 역시 마찬가지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여당인 오세훈 시장과 야당인 서울시의회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시의회는 무상급식을 강행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고, 오 시장은 최후의 수단인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대의민주주의 틀 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시장과 시의회는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타협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그만큼 민감한 이슈인 탓일 것이다. 무상급식에 대한 시의회와 오 시장의 시각 차는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입장과 같다. 야당의 ‘보편적 복지’와 여당의 ‘선택적 복지’다. 복지를 하자는 뜻은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보편적 복지’와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주자는 ‘선택적 복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전혀 다른 얘기다.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더욱이 무상급식 투표는 이어질 무상복지 시리즈의 시작이다. 야당에서는 무상급식 외에 무상보육과 무상의료까지 주장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도 같은 맥락에 있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는 이어질 무상복지 논란의 큰 줄기를 잡고, 이후 정치권의 향배를 좌우할 결정적 의사표현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민감한 정책의 향방을 묻는 투표라면 당연히 정확한 민심이 반영돼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성패는 참여 정도에 좌우된다. 최소한 유권자의 3분의 1이 참여하지 않으면 투표는 무산된다. 관리비용 182억원의 낭비만 문제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를 직접민주주의에서도 풀어내지 못하는 정치적 무기력증과 이어질 소모적 논쟁은 더 큰 문제다.

 주민투표에서 확실한 결론을 내야 한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유권자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투표가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특히 야권은 투표 불참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대의(代議)민주주의를 마비시킨 정치권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려는 주인 앞을 가로막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후안무치(厚顔無恥)다. 정치권은 주민투표에 이른 과정을 반성하고, 투표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