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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는 복지 포퓰리스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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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그를 보면 우려스럽다는 시선이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 말이다. 지난 7일 “무상보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후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복지 포퓰리즘’ ‘즉흥적 발표’라는 비판이다. 사실 무상보육 발언은 실패작이다.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해서가 아니다. 시점이 문제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자들에게 주는 ‘공짜 점심’을 막겠다고 발의한 주민투표 날이 24일이다. 한나라당은 오 시장을 적극 돕기로 했다. 이럴 때 황 원내대표가 무상보육을 얘기하고 나섰으니 투표에서 민주당과 대결해 이겨야 하는 한나라당 지지층에 혼선을 준 건 분명하다.

 이런저런 비판에 주눅이 들진 않았을까. 10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보자마자 “난 요즘 입도 뻥긋하면 안 돼”라고 했다. 무상보육 발언의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던 걸 인정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럼 무상보육은 나중으로 미루는 거냐’고 물었더니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무상보육 추진을 미루거나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복지정책을 꺼낼 궁리를 했다.

 그는 원내대표 경선 공약으로 라이프 사이클형 복지 실현을 내걸었다. 20대는 대학 등록금과 비정규직, 30대는 육아, 40대는 내 집 마련, 50대 이후는 노후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거다. 정말 그걸 다 해볼 작정이었다. 등록금에 이어 육아 문제를 꺼냈으니 앞으로 내놓을 게 줄줄이란 소리다. ‘그게 당의 정체성과 맞는 것이냐’고 하니 그는 “국민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의 문제다. 한나라당이 과거에 어떠했던지 할 것은 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공약한 걸 다 할 수 있겠느냐’고 해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딨느냐”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좌파 냄새가 살짝 나지, 농담이야”라며 웃었다.

 황우여는 복지 포퓰리스트인가. 10일 당 회의는 그를 그렇게 몰아붙이는 자리였다. 안상수·이해봉 등 중진 의원들이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정책은 단계적·점진적으로 갈 것이며 헌법과 당헌에 근거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의 복지는 “민주당의 복지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등록금과 무상보육의 경우를 보면 황우여식 복지의 추진 과정엔 패턴이 있다. 처음 말을 꺼낼 땐 휘발성이 강한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보육 같은 표현을 에둘러 사용해 논란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비논쟁적인 쪽으로 가져간다. 한나라당은 내년에 등록금을 15% 낮추는 단계적 인하 방안을 택했다. 무상보육도 우선 0세 영아에게만 혜택을 줄 작정이다. 논쟁은 크게 벌이되 당내 논의 과정을 통해 현실과 멀지 않은 방안으로 방향을 트는 ‘황우여식 전술’이다. 지금까지 복지 논쟁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비해 수세였다. 그래서 한나라당발(發) 포퓰리즘 논란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도 손해가 아니라는 걸 계산에 넣은 듯하다.

 황우여의 복지 실험은 출발점을 떠난 지 얼마 안 됐다. 포퓰리즘 비판에 대해선 ‘나를 밟고 가라’는 각오다. 그가 정말 포퓰리스트인지는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판명이 날 것 같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