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임대소득에도 건보료 물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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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형평성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강보험료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우선 소득에 비해 턱없이 적은 건보료를 내는 ‘부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메스가 가해질 모양이다. 보건복지부가 얼마 전 보건의료미래위원회에 보고한 건보료 개선방안은 개인 소득이 많은 부자 직장건강보험 가입자의 이자·배당·임대·사업소득에도 건보료를 매기는 게 핵심이다. 1977년 건강보험 도입 이래 직장건보 가입자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에만 건보료를 부과해 온 근본 틀이 34년 만에 바뀌는 것이다. 직장건보 가입자로 위장한 임대사업자나 고소득 전문직에게 실직소득에 맞는 건보료를 물게 해 건보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는 조치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로소득 외 종합소득을 신고한 직장건보 가입자는 전체의 12%인 153만 명이다. 이들은 직장건보 가입자라는 이유로 근로소득에만 건보료를 내고 종합소득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이들 중 지난해 종합소득이 4800만원이 넘는 사람이 5만8000명에 달한다. 이 중 1억원이 넘는 사람도 2만7000명이다. 유리알 지갑처럼 투명하게 드러나는 근로소득에 5.64%(절반은 회사 부담)의 건보료를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대다수 직장인들로서는 복장 터질 일이다.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2003년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을 지역건보에서 직장건보로 전환할 때부터 예견됐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임대사업자들이 직장건보 가입자로 바뀌면서 사업소득에만 건보료를 물게 됐기 때문이다.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금융·임대소득이 많은 부유층이 합법적으로 건보료를 덜 내는 엉뚱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나아가 ‘가짜 직장인’으로 위장해 건보료를 덜 내려는 도덕적 해이마저 불렀다. 정부 개선책은 이런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고, 건보료 부담을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적자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란 점에서도 금융·임대소득 건보료 부과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건강보험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2020년엔 적자 규모가 2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열악한 건보 재정을 개선하려면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일 못지않게 금융·임대소득 등 누락된 소득을 건보료 부과 대상에 포함시키는 조치가 긴요하다. 이참에 고액의 연금소득에도 건보료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금융·임대소득 건보료 부과는 부유층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사회 원칙에 부합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만들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포괄수가제 확대 등 고비용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일이 그렇고, 직장·지역 가입자의 건보료 부과 기준 일원화 추진 등이 그렇다. 금융·임대소득 건보료 부과는 그 첫걸음이란 의미를 지닌다. 반드시 실현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