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베팅’주파수 경매 … 방통위 내부서도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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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시장에서의 미래경쟁력을 좌우할 4세대(4G) 이동통신용 주파수 확보전이 본격화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8일 2.1기가헤르츠(㎓) 대역의 20메가헤르츠(㎒) 대역폭, 1.8㎓ 대역의 20㎒ 폭, 800㎒ 대역의 10㎒ 폭에 대한 경매 참가 신청을 마감한다. 적격심사를 거쳐 다음 달 8일께 경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통신업계에선 벌써부터 업체 간 과열경쟁으로 ‘승자의 저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경매 연기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 고위층에서조차 “업계에 요금 인하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주파수는 ‘무한 경쟁’을 통해 최대한 비싸게 팔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방통위가 경매시장에 내놓은 3개 주파수 중 이른바 ‘스마트폰 황금주파수’로 불리는 2.1㎓는 사실상 주인이 정해졌다. LG유플러스가 단독 입찰해 최저가로 낙찰받을 가능성이 크다. 남은 두 종류의 주파수 중 SK텔레콤과 KT가 모두 욕심 내는 건 1.8㎓다. 대역폭이 800㎒의 두 배인 데다 유럽 20개 업체, 미국·아시아 5개 업체 등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통신사가 이미 4세대용으로 이 주파수를 채택한 때문이다.

 문제는 경매 방식. 방통위가 정한 동시오름 입찰방식은 어느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라운드를 거듭하는 ‘무한 경쟁’이다. 상한선도, 라운드 제한도 없다. 경우에 따라선 낙찰 가격이 시초가인 4455억원의 2배, 3배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

 실제로 2000~2001년 대대적인 주파수 경매를 진행한 유럽 각국에선 경쟁과열로 주요 통신기업이 몸살을 앓아야 했다. 영국의 경우 시초가 1890억원이던 주파수가 150라운드의 접전 끝에 약 10조원에 낙찰됐다. 이탈리아 통신업체인 IPSE2000의 경우 2001년 약 10조원에 낙찰받은 주파수를 2006년 반납했다. 주파수 확보에 너무 많은 돈을 쓴 탓에 경영난에 빠진 때문이었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국민에게 중요한 건 요금 인하지 주파수를 고가에 파는 것이 아니다. 낙찰가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이후 이통사들이 ‘요금을 내릴 여력이 없다’고 버텨도 할 말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방통위의 오남석 전파기획관은 “현재로선 경매 방식이나 시기를 조정할 뜻이 없다. 지나친 출혈이라 판단되면 (이통사들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동시오름 입찰방식=더 이상 최고가를 써내는 사업자가 없을 때까지 입찰과정(라운드)을 반복하는 경매방식. 예를 들어 SK텔레콤과 KT가 1.8㎓ 대역에 동시 입찰한 경우 1라운드에서 두 기업 중 낮은 가격을 써 낸 기업만 2라운드에서 자사가 1라운드 때 제출한 가격보다 높은 입찰가로 재도전할 수 있다. 한 쪽이 포기할 때까지 경매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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