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값 내리는 유럽 상품들 … FTA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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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물가 안정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요즘 시중에는 네덜란드산 냉장 삼겹살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내산 냉장 삼겹살(100g당 2280원)의 절반 가격에 시판되면서 지난해 구제역 살(殺)처분으로 인한 ‘금겹살’ 파동은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한·EU FTA 발효 이후 벨기에와 프랑스산 삼겹살도 쏟아져 들어와 100g당 1000원 선을 놓고 불꽃 튀는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콧대 높던 유럽 명품(名品)의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고급 수입차인 독일 BMW 3 시리즈의 경우 4530만~5160만원(부가세 포함)이던 가격을 최대 850만원까지 깎아 주고 있다.

 한·EU FTA는 단지 유럽 제품의 가격만 떨어뜨리는 게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업체들도 유럽 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 수입 업체들은 관세 인하에다 딜러 마진까지 축소하면서 본격적으로 가격 거품을 빼고 있는 중이다. 유럽 시장에서도 FTA 발효와 함께 국내 업체들이 날개를 달고 있다. 올 상반기에 유럽 25개국에서 33만6000대를 판 현대차는 올 하반기에는 시장 점유율을 5% 이상으로 끌어올려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뛰어넘을 태세다. 일본 언론들은 “엔화 강세에다 한·EU FTA로 유럽시장이 몽땅 한국에 넘어갈 판”이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FTA는 ‘무역창출(創出)’과 ‘무역전환(轉換)’의 두 마리 새를 한꺼번에 잡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발효된 지 7년이 된 한·칠레 FTA는 양국의 교역을 287%나 급성장시켰지 않은가. 칠레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일본을 압도하는 무역전환 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훨씬 거대한 한·EU FTA도 발효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물가 안정과 교역 증가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런 긍정적인 현상을 목도하면서도 정치권이 한·미FTA의 8월 비준을 망설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문제인 FTA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지 자꾸 정치논리를 개입시키면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