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반한 한국 (30) 영국인 조류학자 마틴 서덜랜드의 전국 일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영국인 생태조사 전문가 마틴 서덜랜드가 찍은 서산 천수만의 기러기 떼 사진. 마틴에게 한국은 새의 나라다

아내의 나라는 아름다운 새의 나라

한국 겨울의 매운 칼바람을 처음 맞은 것은 1999년 1월이다. 평생을 같이 살기로 한 사람의 고향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 인연은 해가 더할수록 진해지고 있다.

 새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재미는,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새를 관찰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낸 나는,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행기 창 밖을 내다보며 처음 만날 한국의 새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극동아시아에서만 관찰이 가능한 새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한국을 여행하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를 지켜봤다. 임진강 줄기에서 시작한 내 여행은 강화도까지 들어가게 됐고, 이어 서해안을 따라 경기만·남양만·아산만·서산·금강·해남·순천까지 내려가는 대장정까지 감행하게 됐다. 여행 도중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새들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몽땅 빼앗겼다. 한겨울 한국으로 월동을 하러 온 무리가 워낙 크기 때문이었고,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갯벌의 규모 때문이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의 새가 이루는 다양성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전국 일주에 도전했다. 서해안에서 남도를 지나 동해안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통영·거제·주남·우포늪·구룡포를 거쳐 강릉과 속초를 지나고 춘천을 들렀다 대구로 내려왔다. 오로지 새를 보기 위해 한국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물론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남도의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발견한 검은머리갈매기와 적호갈매기, 동해안 해변에 가득 널린 오징어 사이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흰갈매기, 실개천 기슭에서 우연히 만난 호사도요, 넘실대는 물결 너머로 보였다 말았다 하던 바다오리까지 나는 한국 곳곳에서 새에 흠뻑 빠져들었다.

갯벌에 놀라고 새떼 규모에 놀라고

“새만 보러 왔느냐”는 아내의 불평 섞인 핀잔도 내 강행군을 막지 못했다. 지금이야 새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아내는 새에 관한 한 왕초보였다. 그런 아내에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남편의 호들갑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조류 관찰이 한국인 대부분에게 생소했다. 더욱이 나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다. 망원경을 목에 걸고 풀이 무성한 습지 가장자리를 서성대는 외국인을, 한국인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어느새 내가 한국을 찾은 횟수가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가 됐다. 한국은 계절 따라 다른 옷을 입은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풍경 속에 담긴 철철이 다른 종의 새가 더 아름다웠다. 한국인 대부분이 모르고 있겠지만, 한국은 놀라운 새의 나라다. 텃새를 비롯해 겨울과 여름을 나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철새에게 한국의 자연은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조류뿐만 아니라 호랑이·고래·곰·야생화 등 동식물을 관찰하는 생태여행이 보편화돼 있다. 영국인의 생태여행은 이제 영국 영토를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팔·스리랑카·중국·태국 등지에서 생태여행 상품을 많이 내놓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모두 영국을 상대로 활발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한국도 이들 아시아 국가와 충분히 견줄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찬바람 이는 겨울, 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다시 한국의 들녘에 서고 싶다. 무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순천만과 해남, 서산의 겨울 손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 종종 한국행을 조르는 딸 아이보다 내가 더 조급하고 기다려지는 건, 깃털 달린 한국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마틴 서덜랜드

1954년 영국 출생. 생태조사 전문가. 한국인 아내와 열 살 난 딸을 두고 있다. 야생동물 중에서 특히 새에 대해 남다른 열정이 있다. 탐조 투어 리더로 세계를 누볐으며 영국에서 조류보호구역과 보전센터 등에서 관리자로도 일했다. 현재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자료 수집과 조류 생태조사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99년 결혼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친지 방문 및 탐조 여행을 위해 주기적으로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외국인 독자 여러분의 사연을 받습니다 한국과 맺은 인연이면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습니다. 한국방문의해 위원회 담당자에게 사연(A4 2장 분량)과 사진, 연락처를 적어 e-메일(hime@visitkoreayear.com)로 보내주십시오. 한글은 물론, 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로 써도 됩니다. 원고가 선정되면 한국방문의해 위원회에서 소정의 고료와 롯데월드에서 자유이용권 2장을 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