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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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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바사바’라는 속어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기존 사회질서가 해체되던 혼란기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용어였다. 뒷구멍으로 돈이나 값비싼 선물을 주며 은근슬쩍 청탁하는 짓거리를 의미했다. 일제시대 일본인에게 이권을 청하러 간 사람이 고등어(사바·さば) 두 마리를 싸가지고 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說), 뇌물을 주며 귀에다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라는 설이 분분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사바사바는 ‘해방 10년의 특산물’ 중 하나로 꼽혔다는 과거의 역사가 그 위력을 짐작케 한다.

 사바사바는 악취를 자양분으로 먹고 자랐다. 악취에 너무 노출되다 보니 사회 전체의 후각이 마비됐다. 어느덧 사회풍조가 되고, 삶의 지혜로 떠받들었다. 장사나 취직 등에서 줄을 대고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사바사바에는 채권·채무라는 교환관계가 존재했다. ‘이 세상에 사바사바 하면 안 되는 일이 없고, 사바사바 안 하면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이를 설명한다. 오죽 횡행했으면 55년 7월 치안국(경찰청)은 “범죄에 수반돼 야기되는 ‘잘 부탁한다’는 소위 사바사바를 경찰의 문전에서부터 근멸할 방침”이라고 선포했다.

 사바사바란 용어는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했지만 그 관행은 ‘상납(上納) 문화’로 이어졌다. 엊그제 조현오 경찰청장이 “서울 강남권 경찰서에 근무하면 명절 때 안마시술소 등에서 수천만원씩 받았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강남권(강남·서초·송파·수서) 경찰서에 대해 감찰을 해봤더니 불과 열흘 사이에 3명이 비리 혐의로 적발됐다고 한다. 사건 처리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백만원어치의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경찰관들이 진입 경쟁을 벌이는 ‘물 좋은 강남’이 빈말이 아니었다. ‘투캅스’가 설치고 사바사바가 통한다는 얘기다.

 부정한 돈에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1858~1918)은 『돈의 철학』에서 절묘하게 표현했다. “돈이란 매개체를 통하게 되면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인간의 인품은 소멸되고, 살아 숨쉬는 인간의 영혼은 상실된다”고 했다. 경찰관도 자식 교육을 위해 강남을 선호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강남의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변태와 탈세 등 불법을 저지르는 배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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