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면서 억눌린 감정 분출, 카타르시스 효과 느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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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16면

수다는 사소한 이야기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쏟아놓는 잡담이다. 수다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공존하지만, 대체로 사회가 획일성보다 다양성과 자기 표현을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함에 따라 수다를 바라보는 시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전문가 기고] 수다의 사회심리학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수다에 관하여'에는 예전의 부정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수다가 악의 없는 지루한 잡담이면서 동시에 경솔하고 위험한 발설이라 보았다. 수다스러운 사람은 생각이 깊지 못하고 비밀을 누설하기 쉬운 인물이며, 반사회적인 행동인 수다는 친구를 해하고 적을 도우며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다는 치료를 받아야 할 병으로 취급됐고, 혀가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이성이 잘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에 침묵은 종교적 신성함과 깊은 생각을 잉태한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됐다. 영화 ‘위대한 침묵’이 보여 준 침묵의 가치가 연상된다. 수다와 침묵의 중간 상태, 즉 간단명료한 언어적 표현으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는 칭송을 받았다.“침묵은 금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와 같은 옛 속담들도 수다보다는 침묵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요즘도 문화에 따라, 그리고 개인에 따라 수다보다 침묵을 더 선호하는 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수다의 긍정적인 기능을 많이 인정하는 편이다.

수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첫 번째 관점은 수다가 치유효과를 지닌다고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억압의 해제, 즉 탈억제(disinhibition)를 경험한다. 수다가 치유의 효과를 지니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쌓여 있는 감정을 모두 꺼내 놓는 과정과 이것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담심리학에서 내담자 중심 치료로 잘 알려져 있는 로저스 기법의 기반은 ‘무조건적인 긍정적 수용’이다.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내담자 스스로 상당히 많은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한다. 내담자는 상담자 앞에서 수다를 떨며 마음속의 모든 찌꺼기를 분출하면 되는 것이다.

'수다가 사람 살려'라는 책에 제시된 수다요법은 억압되어 있던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써 상담자와 내담자가 비교적 동등한 입장에서 수다를 떨어 스스로 치유에 이르는 방법이다. 자기 노출을 꺼리거나 변형시키는 억압과 왜곡의 단계를 넘어 발설과 소통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수다를 통한 억압의 해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한다.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사용된 용어로, 종교적으로는 ‘정화’를 뜻하며 의학적으론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뜻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상처나 감정을 분출함으로써 긴장감과 문제가 해소되는 느낌이 바로 카타르시스라고 볼 때, 수다의 긍정적인 힘은 카타르시스와 유사하다.

수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두 번째 관점은 수다가 공감대를 넓히고 친밀감을 강화하는 소통의 수단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수다를 떨 때도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맞장구를 친다든지 고개를 끄덕인다든지 하며 잘 듣고 있다는 신호까지 보내 주면 더욱 좋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공감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관점에서는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수다의 진정성, 즉 진솔함을 뜻한다.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일치되게 표현해야만 진정한 수다가 가능해진다. 겉과 속이 다른 대화는 마음 편한 소통으로서의 수다가 될 수 없다.

이제 수다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비즈니스화되기까지 이르렀다. 조직 내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은 공식적 커뮤니케이션 못지않게 중요하다. 흔히 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은 표현된 내용 이면에 높은 기관의 내막이나 높은 사람의 의중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에 더 진정성이 담길 때가 많다. 식사 시간이나 티타임 때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수다에 그 조직의 진실이 소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은 심지어 수다를 비즈니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원래 표현적 커뮤니케이션인 수다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수다를 통한 소통과 공감이 목적이 아니라 정보 획득이 목적이다. 수다를 떨며 상대를 경계 해제시켜 다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이야기, 즉 내막이나 의중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수다로 풀려 나오기도 한다.

수다는 대개 이미 친한 사람, 즉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끼리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강한 연대뿐 아니라 약한 연대에 속하는 사람들과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수다를 많이 떠는 경향이 있다. 가벼운 언어적 메시지의 교환이 문자로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기차나 비행기의 옆사람과 부담 없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또 만날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상호작용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더 진솔할 수 있다는 것이 약한 연대의 매력이다.

수다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일단 진실된 속마음의 분출구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묶어 주는 공감대 넓은 이야기가 수다로서 큰 가치를 지니며, 진심을 담은 수다는 불통 사회를 소통 사회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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