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플레 조짐…돈 더 풀어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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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Robert A. Mundell·79) 교수는 “미국이 돈을 더 푸는 3차 양적완화(Q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가장 큰 실수는 유로에 대한 달러 가치가 30%나 오르는 것을 방치한 것”이라며 “당시 유로 가치가 1.35∼1.4달러 선에서 안정을 찾았다면 금융회사들이 파산하고, GM이나 크라이슬러가 부도 위기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창립 20주년 기념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먼델 교수는 23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미국 경기 둔화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올 미국 성장률 전망을 2%대 후반으로 낮췄다.

 먼델 교수는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는 미국이 달러 가치 상승을 방치하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지금처럼 6개월 단위가 아닌 1개월 단위로 통화공급 계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달러와 유로 간 환율 안정이 세계 경제 안정의 핵심”이라며 “미국 (FRB)과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가치에 대해 합의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이 유럽의 채권을 사들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나는 일찌감치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거라고 얘기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지만 현실이 되고 있다. 경기 회복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공급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일 3차 양적완화가 없다면 달러는 치솟을 것이다. 나는 통화공급에 관한 한 지금처럼 6개월 단위가 아니나 매달 FRB가 의사결정을 해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인플레 우려가 커지지 않나.

 “맞다. 돈만 풀다 보면 인플레를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투자를 자극할 수 있는 감세를 같이 써야 한다. 미국도 내년 종료되는 감세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는 부시 정부 때인 2001년 시작돼 내년에 중단될 예정인 감세 문제가 내년 미국 대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먼델은 “지금 세계 경제 도처에 위험 요소가 있는 상황에서 감세를 통한 투자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감세 철회 움직임에 대해 “법인세는 계속 낮춰줘야 한다”며 “재정에 부담된다면 주주에 대한 배당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풀어야지 기업에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 하나 미국 경제에 눈여겨봐야 할 문제가 있다. 미국은 서비스 경제다. 하지만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20% 이하로 내려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미국은 13%까지 내려갔다. 모든 걸 아웃소싱할 수는 없지 않나.”

 -오바마의 정책을 평가하면.

 “그는 정치적으로는 훌륭한 대통령이지만 경제 정책은 형편없다. 그의 의료 개혁은 심각한 재정부담을 지우는 치명적인 것이다. 미국은 GDP의 16%를 의료비에 쏟아붓고 있다. 다른 나라의 두 배다.”

 -유로화 탄생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유로화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아시아 공동 통화에 대해 어떻게 보나.

 “비현실적이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 때문이다. 공동 통화가 되려면 공통의 안보 목표가 있어야 한다. 1930년이라면 유로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거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 중이었다. 유로가 가능했던 것은 두 나라가 함께 가입한 나토(NATO)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든 먼델-플레밍 모형이 아직도 경제 분석에 유용한가.

 “어떤 과학적 모델도 적용되는 영역은 한정적이다. 이 모형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거대 경제를 분석하는 데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개도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델을 만들 때만 해도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봐서는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게 한계다.”

글=윤창희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 로버트 먼델=1932년 캐나다 에서 태어났다.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4년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케인즈 경제이론을 글로벌화한 ‘먼델-플레밍 모델’로 9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유로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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