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를 포퓰리즘으로 다루는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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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2일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 증인으로 부른 한진 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출장을 핑계로 불참하자 아예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김성순 위원장은 “조 회장의 불출석은 국민과 국회를 매우 모독하는 행위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의 불출석도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민간기업의 노사분규에 청문회를 열겠다는 국회 결정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국회법에 따르면 청문회는 ‘중요 안건의 심사에 필요한 경우’ 상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열 수 있다. 이처럼 청문회에 대해 간략하고 포괄적인 규정만 명시해둔 것은 국회가 그 만큼 자율적으로 책임 있게 운영하란 뜻일 것이다. 청문회는 활발히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안건이나 청문회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경우 개별 기업의 노사분규다. 국회가 청문회로 다룰 ‘중요 안건’에 해당된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 사태는 크게 보자면 중국 조선산업의 부상으로 위기에 처한 업계의 열악한 현실에서 비롯됐다. 경쟁력을 잃은 한진중공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필리핀에 새 조선소를 지었고, 기존 영도조선소는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 수 있게 구조조정하던 중이었다. 당연히 대량해고가 발생하고 이후 파업과 직장폐쇄, 불법점거농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경쟁력을 잃은 여느 기업의 몰락과정과 다르지 않다.

 노사분규는 기본적으로 노사 간에 풀어야 할 문제며, 노사협상이 안 될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조정·심판해야 할 일이다. 국회가 뛰어들 경우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선례만 남길 뿐이다.

 지식경제위원회가 청문회를 열고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부르겠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허 회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반값 등록금과 감세철회 등 정책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 따른 정치권의 감정적 반응으로 보인다. 정치권을 비판한 기업인을 불러들이고, 민간 기업의 노사갈등에 뛰어드는 국회의 모습은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