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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경영의 진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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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지훈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교수

지난 21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11년 만에 한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300년을 내다보며 30년의 계획을 세우는 그의 발표 내용도 훌륭하지만 그의 강의가 마음으로 와 닿는 것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진정성’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는 한국계 일본인이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조센진’이라 불리면서 차별을 당해 왔고, 이런 차별이 존재하는 국가이기에 많은 재일동포가 한국계라는 것을 숨기면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실을 숨기기는커녕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2010년 6월에 있었던 소프트뱅크 향후 30년 비전 발표회에서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의 일본 생활을 시작으로 ‘재일(在日)’이라는 딱지를 가지고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무수한 주주와 함께 나누면서 실로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 영상을 보면서 필자도 정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의 진정성은 단순히 기업의 실적이나 지도자의 카리스마, 직원들에 대한 좋은 말과 대우 같은 것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으로서의 강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의 비전을 믿고,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조직구성원들의 힘은 그 어떤 당근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진정성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다. 진정성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또는 집단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또는 기업이 “우리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봐야 소용없다. 진정성은 산업사회에서 나오는 제품처럼 간단히 만들어낼 수 없다. 집단의 진정성은 집단을 끌고 가는 리더의 내면적인 자아가 투영되는 것이다. 단순히 몇 가지 행동이나 이벤트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리더들은 어떤 개인적인 특성들을 언제, 누구에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행동한다.

 진정성 있는 리더들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알고 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역시도 잊지 않는다. 자신들의 개성과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집단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특징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안다. 이러한 문화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최대한 결합해 중요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진정성 있는 리더들의 특징이다. 리더로서의 진정성은 우선 말하는 것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직원들이나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이 절대로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단지 몇 가지 행동으로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언제나 하던 말을 기억하면서 그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장되게 말을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행동을 일삼는다면 누구도 그를 진정성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부 소수 주변인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비공식적인 방편을 이용해 이들을 자신의 그림자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에게 요직을 맡기거나 설득하고, 사람을 바꾸는 정치적인 행보를 통해 리더십을 공고하게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정치적인 접근방법은 확실히 과거와 같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조직구성원들을 빈틈없이 지휘해 성과를 올리는 산업사회적인 조직에서는 큰 효과를 보았다. 그렇지만 오늘날과 같이 다극화되고, 조직 전체의 혁신과 창의적인 힘을 끌어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도록 해야 하는 미래형 리더십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다.

 진정성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독특함과 조직의 문화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여기에서 강한 힘을 끌어낼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강한 공감대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끌고 나가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앞으로 더욱 각광받게 될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영국 보수당을 이끄는 데이비드 캐머런 등의 리더십도 이런 유형에 가깝다. 조직 내외부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언제나 모든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제왕과 같이 조직을 쥐고 흔들며, 계층적인 관리체계를 중시하고, 지나치게 기술과 자본에 의존하는 리더십과 경영체제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미래를 경영하는 조직에는 진정성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