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씨 남긴 채 봉합된 수사권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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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무총리실에 이어 청와대까지 나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 미봉(彌縫)에 그쳤다. 검경이 합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 지휘권 유지와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 개시권(開始權) 확보로 압축된다. ‘지휘’와 ‘독자적’이라는 개념은 충돌한다. 검경은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티격태격하고 있다. “한심하다”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검경 갈등을 풀려다 보니 어정쩡한 봉합에 그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논란의 핵심은 형소법 196조의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1항 개정안과 ‘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할 때에는 수사를 개시·진행한다’는 2항 개정안이다.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주자고 한 당초 취지와 거꾸로 검찰의 지휘권이 ‘모든 수사’로 확대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모든 수사’에 내사(內査)가 포함되는지를 두고 벌써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내사는 정식 사건으로 입건(立件)하기 전에 범죄 혐의를 확인하는 초기 조사 단계를 말한다. 경찰은 범죄 혐의가 의심되면 검찰 지휘 없이 자유롭게 내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 ‘모든 수사’에는 내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반면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합의안 원문에는 내사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나의 사실에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권(搜査權) 조정의 범위도 격론이 예상된다. 경찰의 수사개시권이 모든 형사사건에 적용되는지, 아니면 일부에 국한되는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교통을 포함한 민생치안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우리는 본다. 수사권과 기소권(起訴權)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검찰이 독점적으로 틀어쥐고 흔들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국민의 인권과 편익 차원에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형소법 개정안은 이달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개념을 명확히 하고 조문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