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장관 토론회, 알맹이가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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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주말 이틀간 국정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총리, 각 부처의 장·차관 등 국정 책임자들이 총출동했다. 주제는 내수(內需)경기 활성화였다.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골이다. 선거용이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도 타파할 수 있다. 문제는 알맹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국정 책임자 88명이 모여 기껏 내놓은 게 공공부문 근로시간 ‘8·5제’, 공휴일의 대체 휴일제 정도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서비스산업 육성 문제는 제쳐놓고 이런 지엽적인 아이디어만 거론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소비 부진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걸 풀 근본적인 열쇠가 서비스산업 활성화에 있다는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활동인구의 66%가 몸담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54%를 차지하는 게 서비스산업이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고선 일자리와 체감경기가 좋아질 수 없다. 이명박 정부도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외쳐왔다. 그런데도 서비스산업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쟁력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후퇴했고, 취업유발계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생산성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하위다. 구조조정을 서둘렀어야 할 도소매·음식숙박 같은 전통적 서비스는 아직도 비대(肥大)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교육이나 의료, 사업서비스(법률·회계) 등은 여전히 빈약하다.

 서비스 선진화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외자가 맘껏 활동하라고 만든 경제자유구역에서조차 외국 의료법인이 설립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 투자개방형 영리의료법인은 정부 부처 간 갈등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경제자유구역에만 설립할 수 있도록 변질됐다. 정부에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할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국회도 설득했어야 했다. 게다가 이해 집단의 밥그릇 싸움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 시장을 개방하겠다며 내놓은 ‘전문자격사 선진화 방안’은 이들의 반발에 부닥쳐 잠자고 있다. 일반 의약품의 수퍼마켓 판매는 간신히 허용했지만 국민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국정 책임자들이 내수경기를 활성화하고 소비 부진을 타개할 생각이라면 서비스산업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그게 핵심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틀 밤낮이 부족하다면 시간을 더 내서라도 토론해 결론을 내려야 했다. 엉뚱한 주제 갖고, 아무리 토론해봐야 내수는 좋아지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서비스 분야에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늘어나야 체감경기가 호전된다. 그게 친(親)서민이고, 최대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