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기자의 ‘금시초연’⑫ 문도희 ‘i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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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희씨

1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네 명의 연주자가 선다. 바이올리니스트 둘, 비올라·첼로 연주자가 각각 하나다. 하지만 이들이 연주할 곡은 5중주다. 어떻게? 나머지 한 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기 중이다. 그의 악기는 아이패드 세 대. 인터넷으로 한국의 4중주단과 연결돼 5중주를 펼친다.

 미국에서 아이패드를 ‘연주’할 사람은 작곡가 문도희씨다. 스탠퍼드대 컴퓨터음악 및 공학연구소(CCRMA)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는 한국 연주자로 된 4중주단 콰르텟21을 위해 곡을 썼다. 아이패드는 기존의 악기를 흉내 내는 대신 고유의 전자음을 내며 현악기들과 협연한다.

 콰르텟21의 첼리스트 박경옥씨는 이 작품을 “유머러스한 전자음악”이라 소개했다. 실험성을 앞세운 기존 전자음악이 다소 진지함 음색을 유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아이패드의 활용도에 어울리게 경쾌하고 발랄하다. 작곡가는 재즈 리듬을 간간이 뒤섞어 ‘놀이’의 기분을 더했다.

 또 작품 곳곳에 아이패드가 혼자 연주하는 구절을 넣었다. 악기로서 아이패드의 역할을 과시하는 부분이다. 이때 현악기들은 잠시 쉬고, 아이패드가 혼자 실력을 뽐낸다. 아이패드는 정해진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대신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스마트폰이 나온 후 음악과 공학이 활발히 만나고 있다. 젊고 진취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후 아이패드를 이용해 앙코르 연주를 한다. 문도희씨가 속한 연구소 CCRMA의 거 왕(Ge Wang) 교수가 개발한 피아노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다. 거 왕 교수는 아이폰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술이 음악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 작품도 그 중 하나다.

 문씨는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콰르텟21을 위해 이번 곡을 썼다. 작품 제목도 ‘i21’로 정했다. 현악4중주의 전통적 레퍼토리는 물론 현대 음악 발굴에도 힘써온 악단을 위한 선물이다. 연주시간 약 6분. 02-586-0945.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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