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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사방기념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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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

1975년 4월 17일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일대에 진눈깨비가 몰아쳤다. 연두순시차 대구에 내려온 박정희 대통령은 굳이 영일군 흥해읍 오도마을의 사방공사 현장을 가보려 했다. 헬기가 못 뜨는 날씨인 데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는 벽지인지라 주위에서 극구 말렸으나 막무가내였다.

 전용차로 포항에 도착해 포항제철(현 포스코)에서 준비한 지프로 바꿔 타고 산길을 달렸다. 현장에 도착하니 눈비와 함께 바닷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지게와 삽·곡괭이 등으로 벌거숭이 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에 동참한 주민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2년 뒤 오도마을 주민들은 그곳 해안에서 건져 올린 바위에 ‘헐벗은 산에 나무 심고 풀씨 뿌렸더니 숲은 우거져 산짐승 보금자리 치고…’라고 새긴 순시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이 비석이 주춧돌이 된 포항의 사방기념공원은 공원이라기보다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되살려 놓은 역사 공간이다. 19만㎡에 이르는 공원부지는 옛적 왜구가 침입하면 봉화(烽火)가 오르던 산이다. 국비 등 133억원이 들어간 이 공원은 2007년 11월 문을 열었다.

 바다 쪽 산비탈에 조성된 야외 전시장에는 40여 년 전 영일지구 사방사업 현장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지게를 지고 일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물론 황소·달구지·리어카·고물 GMC 트럭까지 산기슭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2층 건물의 사방역사관에는 당시 쓰던 사방 도구 등 500여 점의 유물과 영상실·사방체험장 등이 갖춰져 있다. 동해안 절경이 이어지는 해변도로를 끼고 있어 지난해 한 해만 8만여 명이 방문했고 몽골·중국 등의 관계자 200여 명도 견학을 다녀갔다.

 71년 가을 시작된 영일지구 사방사업은 당시 전국에 몰아쳤던 산림복구 운동의 한 성공사례다. 당시 우리나라 산의 태반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특히 척박한 이암(泥岩) 토질의 영일만 일대 산들은 황폐한 붉은 산이 대부분이었다. 이 지역 4500만㎡의 산지에 5년간 연인원 360만 명이 참여해 쉬지 않고 매달려 마침내 ‘동해안의 기적’을 일궈냈다. 민둥산의 등고선을 따라 계단을 만들어 잔디를 입힌 뒤 싸리나무 등 씨앗을 파종하고 토질에 맞는 나무들을 심었다. 요즘처럼 중장비도 흔치 않아 석축에 쌓을 돌을 지게로 지고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야 했다.

 이 시기 사방사업은 산림녹화뿐 아니라 생산적 복지로도 기능했다. 하루 일한 삯으로 받은 밀가루는 그때까지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게 했다. 사방기념공원을 조성한 박승호 포항시장도 당시 중학생으로 휴일이면 사방공사에 나갔다. 그는 “당장의 끼니가 아쉽도록 궁핍했던 시기에 한마음으로 국토녹화에 나섰던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딜 가나 울창해진 숲이다. 흔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동해안을 따라 사방기념공원을 한번 찾아 보시라.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