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조총련의 역사 왜곡 … 돈이 바로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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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충형
국제부문 기자

‘조선학교’는 친북 성향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운영하는 교민 대상의 초·중·고등 교육기관이다. 남한 출신의 교민 자녀 상당수도 이곳에 다닌다. 여기선 북한식 한국어를 쓰고 북한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는 민족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조선학교가 최근 교과서 내용을 바꿨다. 가나가와(神奈川)현 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는 『현대조선역사』 중 “일본 당국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극대화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이) 날조했다”던 표현을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고 바꿨다.

 이 학교가 바뀐 데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 중단 압박이 주효했다. 가나가와현은 지난해 현내 조선학교에 대해 교과서 표현 등을 문제 삼아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결정했다. 다급해진 조선학교 측은 교과서 개정을 약속해 지급 중단을 막았다. 구로이와 유지(黑岩祐治) 가나가와 지사는 “보조금을 내년에도 지급할지는 수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압박했다. 지난 3월엔 오사카(大阪)부의 조선학교가 보조금 중단 압력에 교과서 개정을 약속한 바 있다. 오사카부 정부는 한술 더 떠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교실에서 떼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고교 수업료 무상화를 실시하면서 조선학교를 대상에 넣을지 저울질했다. 정부가 수업료 대신 지급할 지원 재정이 김정일 찬양 교육과 북한 정권 지원금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란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학교들은 문부과학성의 시찰에 맞춰 사상교육 자료실 문을 잠그고 『현대조선역사』 수업을 잠정 중단했다.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11월 수업료 지원을 결정하면서 “돈을 다른 용도에 쓰지 않았다는 입증 서류를 제출하고 교육 내용을 개선하라”고 요구했지만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공화국 신민’이란 조총련의 긍지와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총련이 꼬리를 내린 데는 북한의 잇따른 국제적 범죄와 도발로 조총련의 일본 내 입지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2002년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자 지자체들은 앞다퉈 준외교기관으로서 조총련 지부에 부여한 면세 혜택을 박탈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2006년엔 각지의 조총련 건물이 화염에 휩싸이고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찢겼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자 16개 현 의회가 조선학교를 무상수업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일본 우익이 주도하는 반(反)북한 반조총련 여론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조총련은 한때 연 2조원 정도를 헌금하던 북한의 주요 자금원이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범죄와 도발로 조총련은 자존심마저 버리게 됐다.

이충형 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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