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29) 통영 구타사건(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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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63년 개봉한 영화 ‘김약국의 딸들’의 출연 여배우들. 왼쪽부터 엄앵란·황정순·최지희·강미애·이민자. 촬영 당시 선배 박노식에게 맞은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참을 인(忍)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내 경우가 그랬다. 1963년 봄 ‘김약국의 딸들’ 통영 촬영장에서 선배 박노식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했다. 오른쪽 얼굴을 맞았다. 술에 취한 행동이라지만 정말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박노식은 내 오른쪽 가슴과 어깨도 짓밟았다. 변인집 촬영기사가 소리 지르며 박노식을 제지했다. 그는 박노식보다 한참 선배였다.

 “노식아, 너는 후배만 보이고 선배는 안 보여?”

 박노식은 변 기사를 뿌리쳤다. 유현목 감독도 “이 놈아, 선배는 안 보여”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유 감독은 당황하거나 화가 나면, 손가락으로 콧잔등의 안경만 치켜 올리던 ‘양반’이었다. 동료 김석강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참다 못한 변 기사는 박노식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자기 코에서 피가 나는 걸 확인한 박노식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이고~, 촬영기사가 배우 팬다.”

 활극도 이런 활극이 없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박노식을 끌고 갔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가만히 있었지만 속에선 별별 생각을 다했다. ‘아무 잘못 없이 얻어맞으면서까지 배우를 해야 하나? 영화 때려 치고 한 판 붙어?’

 유 감독과 변 기사는 술상을 다시 차리라고 시켰다. 오른쪽 볼과 눈이 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런데도 내가 무릎을 꿇고 있으니,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두 분은 신성일이란 청년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다. “영화계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라며 위로를 했지만 성난 마음에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눈치 빠른 변 기사가 “미스터 신, 들어가 쉬라”며 다독였다. 방에 가보니 김석강은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 영화 이후 충무로를 떠난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촬영장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배우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엄앵란도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사단을 일으킨 박노식은 뒤늦게 나타났다. 술이 덜 깬 것처럼 보였다. 그가 민망한 지 “촬영합시다”라고 외쳤다. 아침이 되니 내 오른쪽 얼굴은 더욱 부어 올랐다. 화난 유 감독은 “노식아, 네가 쟤(신성일) 때려서 촬영 못할 정도야”라며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노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데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만약 그가 “성일아, 미안하다. 내가 술김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다면, 사나이로서 그냥 털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내 얼굴을 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니…. 신필름에 있을 때는 이런 선배를 만난 적이 없었다. ‘두고 보자.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날 촬영은 왼쪽 뺨으로 때우고 지나갔다. 박노식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박노식은 고등학교 때 권투선수였다고 한다. 내가 권투선수 역을 두 번이나 맡은 것도 한편으론, 박노식을 겨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일단 화를 꾹 눌렀다.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됐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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