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처럼 장·단기 금리차 클 때는 불황 안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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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24면

미국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좋은 날은 갔다”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는 연말께부터 불황이 올 것이라고 암시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갖가지 잠재적인 악재를 언급한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가장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인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을 보면 곧 불황이 시작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는 은행에 단기적으로 빌려주는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10년짜리 재무부 채권의 금리는 연 3.06%다. 두 금리의 격차가 역사상 가장 크다.

시장 고수에게 듣는다

불황이라는 우려하는 상황이 되려면 금리가 정반대여야 한다. 경기 과열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져야 연준이 본격적인 긴축에 나서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연준이 장기금리 이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06년 6월이었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다르다’며 불황이 오는 것을 부정했다. 그들은 “전 세계에 넘쳐나는 돈이 미국 국채 투자로 몰리면서 장기금리가 내려간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듬해 불황이 시작됐다.

그전에도 예외는 없었다. 1969년 이후 일곱 차례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높아지는 ‘수익률 곡선의 역전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경기는 침체했다. 이처럼 수익률 곡선은 경기를 예측하는 데 믿을 만한 도구다. 특히 가장 먼저 경기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했다. 보통 장·단기금리의 차이가 커지고 15~16개월 뒤에는 호황이 시작됐고, 수익률 역전이 생긴 지 9개월 뒤에는 불황이 왔다.

앞으로 한두 해 사이에 기준금리가 장기금리 이상으로 올라가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불황을 걱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오히려 지금처럼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훨씬 높은 상황에서는 은행이 대출을 늘리게 된다. 그만큼 시중에 도는 돈이 늘어날 것이다. 당장 은행 대출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새로운 대출처를 찾기 위한 시차 탓이다. 1990년대 초반 벌어졌던 부동산 과열에 따른 은행 위기 때도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재개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최근 몇 주 간 경제에 악영향을 줄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진행형이고, 이머징 국가들은 경기 과열을 우려해 금리를 올렸다. 은행이 압류한 주택은 여전히 미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고, 주가는 흔들린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0%는 경기 호전을 이끌어내는 데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물론 15조 달러 규모의 미국 경제가 쉽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지난 일곱 차례의 경기 변동에서 경기 확장기는 평균 71개월간 이어졌다. 이번에 연준이 돈줄을 푼 지 2년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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