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탐욕스런 지도층, 미신에 빠진 대중 … 다시 보는 ‘우신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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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
296쪽, 1만3000원

흔히 『우신예찬』으로 알려졌던 책이다. 원저는 지금으로 500년 전인 1511년 출판됐다.

 저자 에라스무스는 수도사학교에서 그리스어·라틴어 고전을 공부했다. 사제 서품을 받았으나, 인문학 연구로 평생을 보냈다. 네덜란드 태생이었으나, 파리·로마·런던 등지에서 지내며 유럽의 정치사회 현실을 목격했다. 당시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부패가 극심했다. 책이 나온 시기는 종교개혁(1517)이 일어나기 6년 전이었다.

 책은 스스로를 바보로 일컫는 여신이, 자화자찬 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지도층의 탐욕과 민중의 미신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특히 왕과 제후들에 대해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귀를 빌려준다’ ‘민중에 대한 아첨의 말을 하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한국 사회의 지도층에게 유효한 지적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행복의 조건으로 ‘넉넉한 사랑과 마음의 여유’를 제안한다.

 에라스무스는 최초에 라틴어로 책을 써 파리에서 출판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불어판 번역본을 재번역한 책이 읽혀 왔다. 원전을 한글로 직역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옮긴이는 고려대 정외과 출신으로 88년 이후 일간지 등에서 기자로 일해왔다. 에라스무스가 고대 철학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실수로 발언자를 혼동했다고 주석에 언급(117쪽)할 정도로 꼼꼼하게 작업했다. 1995년 책을 처음 접하고 직역을 위해 라틴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역자 후기가 13쪽에 이른다. 그는 에라스무스에 대해 사실과 진실에 충실했던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에라스무스는 일주일 만에 책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이 점에 대해 역자는 ‘사실과 진실에 충실하면 글은 저절로 써지는 법’이라고 적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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