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낭독회, 독일에선 관객이 돈 내고 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6일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독일작가 잉고 슐체와 김연수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만남에서 슐체는 급변의 시대를 헤쳐가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연수는 “문학은 세상 사람들에게 입을 붙여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태성 기자]


3회째를 맞은 올해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주제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다. 무한경쟁 시대에 문학의 자리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정작 참가 작가들에게 와 닿는 것은 행사의 의미보다 감정 교환과 유대감 같은 것들일 게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로부터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칭찬을 받은 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49)와 한국의 중견작가 김연수(41)씨가 26일 오전 자리를 함께했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글 쓰는 일의 의미, 분단의 경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슐체가 “최근 낭독회에서 800유로(약 123만원)를 벌었다”고 하자 김씨가 반응을 보였다.

 ▶김연수(이하 김)=독일 작가들은 책보다 낭독회에서 더 많은 수입을 얻기도 하나.

 ▶잉고 슐체(이하 슐체)=물론 주 수입원은 인세다. 하지만 유명한 작가는 한 달에 서너 차례 낭독회에 참가한다. 낭독회는 서점에서 경비를 대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은 입장료를 낸다.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낭독회가 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20년 전에 비하면 최근에 확실히 많아졌다.

 ▶김=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독일의 낭독회 문화를 처음 접했다. 그 이후 한국에도 낭독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관람객이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작가 역시 무보수로 참가한다. 독일에서 낭독회가 늘어난 것은 기술 발전의 역설적 효과인 것 같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책을 내고도 숨어 지내는 작가가 많았는데 요즘은 독자를 만나려고 한다. 당신의 작품 중 소설집 『핸드폰』(문학과지성사)을 읽었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대사회의 소외, 소통의 단절을 다뤘다.

 ▶슐체=내 책을 읽어봤다니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당신 작품이 독일어로 하루 빨리 번역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직접 작품을 읽어 주는 낭송회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기술은 양가적이다. 휴대전화가 사람 목숨을 구할 때도 있지만 은밀한 시간을 파괴한다.

 ▶김=당신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슐체=문학은 내가 경험한 것을 그냥 놓아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나 삶, 혹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까. 우리가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 시대를 이야기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또 우리 삶, 내가 사는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숙자나 실업자, 내가 쓰는 컴퓨터를 만드는 아프리카 콩고의 노동자 같은 사람들 말이다.

 ▶김=같은 얘기도 새롭게 써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또 당신 말처럼 문학은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입을 붙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슐체=당신은 역사에서 소재를 찾아 ‘공식 역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나도 역사책에서 이야기의 단초를 가져올 때가 있다. 하지만 사료의 사실 여부보다 어떤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느냐가 더 흥미롭다. 독일 사람들은 베를린 담장이 무너진 1989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다 나빴고, 이후는 다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다르게 본다. 89년은 역사의 한 단면이자 전환점이다. 종속 현상은 같은데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89년 이전까지 이데올로기(이념)에 종속됐다면 이후로는 경제에 종속되고 있다. 한국은 최근 40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김=나는 89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생이 돼서 어린 시절 배운 내용의 상당 부분이 체제나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알게 됐다. 겉으로 보이는 세계 말고 진실된 세계가 따로 있었다. 그게 내 소설의 출발점이 됐다. 어쨌든 89년에 우리 둘은 비슷한 단절을 체험한 것 같다.

 ▶슐체=우리 둘의 경험에서 다른 점은 어떤 점일지, 그게 흥미롭다. 통일 후 1년간 독일은 생산구조, 체제 등이 총체적으로 바뀌었다. 돈과 공기, 사랑, 모든 것이 변했다. 한국을 생각할 때 부러운 것은 성장과 발전을 스스로 해냈다는 것이다. 동독은 서독이 밀려들어오면서 많은 부분을 서독사람들에게 내줬다.

 ▶김=인터넷으로 국제뉴스를 수시로 접하고 외국여행도 자주 하는데 외국소설을 왜 읽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 나라의 소설이나 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문학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슐체=한국과 독일은 공통점이 많다. 12년 만에 한국에 다시 와보니 예전보다 더 생기 있고 개방적인 나라가 된 것 같다. 도시의 색채도 다채로워졌다. 사람들도 활기차고 유머러스하다. 특히 문학을 높게 평가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글=신준봉·정원엽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