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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 법인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은 허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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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내년으로 예정된 법인세율 인하에 대해 반대 의견이 정치권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유는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 추가적 재원이 필요하고, 높은 단계의 세율 인하는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법인세율 인하 계획을 철폐함으로써 추가적 세수를 확보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을 달성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법인세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세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로 세수 확보, 형평성, 효율성을 들고 있다.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세목에 따라 각 목표 간 가중치를 달리하고 있다. 모든 세금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키나, 그 정도는 세목마다 차이가 있다. 법인세를 통한 세수 확보는 국가경제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끼치므로,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값비싼 정책 수단이다.

 1980년대부터 세계경제의 흐름은 개방화란 용어로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개방화란 국가 간 경제적 장벽이 무너져, 무한 경쟁의 질서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민간부문에서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정부에서도 제도를 통해 우월한 경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세정책은 국가 간 좋은 경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조세 경쟁은 낮은 세율로의 경쟁이다. 개방화 초기였던 1981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법인세율은 48%였으나, 개방화가 진행되고 30년 흐른 후 2010년에 26%로 낮아졌다. 이제 법인세 정책은 한 국가가 여러 가지 정책 목표를 따져가며 선택해야 하는 정책이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따라야 할 국제적 규범이 되었다.

 법인세율 인하에 반대하는 논리는 높은 단계의 세율이기 때문이다. 낮은 단계의 세율은 아무런 반대 없이 이미 인하되었다. 낮은 단계 세율은 중소기업에 적용되고, 높은 단계 세율은 대기업에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질적인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개방화 시대에 맞는 법인세 구조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 세계의 법인세제를 비교해 보면, 누진구조를 가진 국가는 한국과 미국·일본뿐이다. 다른 모든 국가는 이윤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단일세율 체계를 가지고 있다. 법인세는 법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법인과 관련된 사람들이 낸다. 주주, 종업원, 소비자, 자본가 등이 법인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법인세는 법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세목이다. 그래서 법인세의 누진구조를 통한 소득 재분배는 실질적으로 달성하지 못하는 허상일 뿐이다.

 한국의 법인세 부담이 높은지는 법인세 정책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자료다. 200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규모를 보면, 한국이 4.2%인 반면에 OECD 국가 평균은 3.5%다. 한국의 법인세는 세수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개방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 폐쇄경제 하에서의 정책구조다. 이제 국제규범이 되고 있는 법인세의 정책 방향은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이다. 단순 논리에 세수 확보 수단이나 소득 재분배 기능과 같은 감성적 논리가 끼어들어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인세율 인하정책에 혼선을 끼친다면,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