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23) ‘예능인’ J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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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6년 3월 구 여권인사들의 오찬 모임에 참석한 JP(오른쪽)가 이후락과 6년 만에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두 달 후 골프장에서 서로 불편했던 관계를 정리했다. [중앙포토]


5·16을 주도한 JP에 대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하나가 있다. 그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단초라고 생각한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이 대단한 화제를 모았을 무렵이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한남동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약수동에서 JP의 벤츠를 발견했다. 청구동(현 신당동) 자택에서 장충동으로 나가는 길이지 않았나 한다. JP는 뜻밖에 혼자서 차를 몰고 있었다. 호젓한 드라이브! 나 역시 시간만 있으면 드라이브를 즐겼기에 그런 심리를 잘 알았다. JP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방향이 달라 그만두었다. 그때 용기를 냈더라면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했으련만….

 JP는 군인 출신이지만 로맨티스트였다. 젊은 시절 잘 생겼고, 두뇌 회전이 빨랐기에 내가 아는 한,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일요화가회의 중심이었다. 실제로 수채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유채화는 시간이 많이 걸려 잘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만돌린을 켤 줄 알았고, 외국 대사를 불러 문화행사도 열었다.

 소띠인 JP는 소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언젠가 JP와 나, JP 사위였던 이동보, 그의 친구인 영화배우 신영일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JP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재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소 네 마리가 앉아서 밥을 먹네.”

 우리는 그 말에 껄껄 웃었다. JP가 25년, 내가 37년, 이동보와 신영일이 49년 소띠였던 것이다. JP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들 소띠로구먼. 소띠는 일을 많이 하는 팔자야.”

 공화당의 심볼이 황소다. 공화당을 만든 인물이 JP인 걸 감안하면 JP의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크다. 확인되지 않은 나의 추측이다.

 JP는 골프 실력도 대단했다. 핸디가 8~9(싱글)로 아마추어 치곤 수준급이었다. 허리 디스크로 풀스윙은 못하지만 어프로치와 퍼팅이 정확했다. 서너 번 게임을 했는데 통틀어 내가 한 타를 뒤졌다.

 JP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화해한 골프 회동(안양컨트리클럽)도 잊을 수 없다. 86년 5월 무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공화당 조직은 급격히 화해됐다. 신군부는 공화당 출신을 부정축재 등의 명목으로 잡아들였다. 이후락은 그 과정에서 “나는 콩고물밖에 못 먹었다”고 말했다. 이후락의 ‘콩고물 발언’은 JP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측근이던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그런 두 사람이 그 후 처음으로 골프를 친 자리였다.

 “두 분이 같이 앉아 계시니 저로선 뵙기도 좋고, 마음이 편안합니다.”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이후락은 머리가 하얗고, 성격이 급해 말을 더듬곤 했다. 그가 내 말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동안 내, 내가 악역 했잖아.”

 JP 때문에 자신이 언론에 두들겨 맞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굉장히 인간미 넘치는 말로 들렸다. 최근 JP가 5·16 관련 인터뷰를 하며 “박통을 위해 내가 악역 했잖아”라고 한 것은, 내가 알기로 이후락의 ‘악역론’ 변주였다. 등을 돌려던 두 사람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통하고 있던 것이다. JP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삶의 향기에 젖어 들었다. JP와 박 여사, 내내 건강하십시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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