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엽제 공동조사, 투명성·객관성이 열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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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한미군이 1978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소재 미군기지인 캠프 캐럴에 다량의 고엽제를 매립했다는 의혹과 관련, 한·미 양국이 공동조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의 환경전문가와 정부 관계자·주민대표·시민사회단체 인사 등이 직접 캠프 안에 들어가 조사를 벌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한 미군기지의 환경 오염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던 미군 당국이 의혹이 제기된 지 사흘 만에 신속히 합동조사에 합의한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 양국은 투명성과 객관성이 보장된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한·미 관계의 동요를 막고, 파장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매립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고 미 언론에 처음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븐 하우스에 따르면 캠프 캐럴에 매립된 고엽제의 양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배가 많은 100여t에 이른다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기지 내 창고에 보관돼 있던 드럼통 250개 정도를 묻은 데 이어 15~20차례에 걸쳐 다른 곳에서 실려온 비슷한 개수의 드럼통을 매립했다는 것이다. 60년대 말 비무장지대 인근 북한군 예상 침투로에 한·미가 고엽제 살포 작전을 벌였던 사례가 있는 만큼 고엽제 불법 매립이 캠프 캐럴만의 문제였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이 조사 대상을 캠프 캐럴로 국한한다고 못 박은 것은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혹을 낳을 수 있다. 조사 대상을 다른 미군기지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또 경우에 따라 한국 군 당국의 묵인이나 방조 여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본다.

 고엽제의 주 성분인 다이옥신은 치사율이 청산가리의 1만 배에 달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이런 독극물 100여t이 30년 넘게 낙동강 수계에서 불과 650m 떨어진 곳에 묻혀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의혹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철두철미한 조사를 통해 있는 그대로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축소나 왜곡, 은폐는 문제를 더 키울 뿐이라는 점을 한·미 양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