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용기와 비전 돋보인 오바마 새 중동정책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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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말 새 중동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으로 아랍권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가운데 오바마는 중동의 민주화와 평화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다. 45분간의 연설에서 그는 자유와 인간적 존엄,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 아랍인들의 열망을 지지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나라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중동판 마셜 플랜’의 일단도 내비쳤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중동 평화에 대한 구상이다. 오바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당시의 경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67년)의 승리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및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정착촌 건설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왔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오바마는 점령 이전의 경계를 출발점으로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로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일 만한 충격적 입장 선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대계 유권자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국내정치적 현실에서 오바마가 이 같은 입장을 택한 것은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아랍의 봄’은 왔어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동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영토와 안보의 교환을 통해 평화가 정착된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

 호스니 무바라크 체제 붕괴 이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문제 삼는 여론이 이집트에서 높아지고 있다. 이집트의 민주화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인접국인 시리아와 요르단의 정세도 불안하다. 팔레스타인은 올가을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국가로 인정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새롭게 조성되는 불리한 안보 환경에서 무엇이 진정 국익을 위한 길인지 이스라엘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점령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확대함으로써 실질적인 영토 확장을 꾀해 왔다. 이미 50만 명에 이르는 정착촌 주민의 강제 퇴거를 요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착촌의 일부를 인정받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크기의 땅을 팔레스타인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경에 관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단기적 이익에 연연해 현상유지를 고집해서는 중동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상호 양보를 통해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중동 평화의 핵심을 파고든 오바마의 용기를 우리는 높이 평가하면서 그 진심에 다가설 것을 이스라엘에 촉구한다.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테러리즘을 포기하는 결단을 통해 역사적인 기회를 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