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종이 1톤 만들려면 다른 자원 98톤이 들어간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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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
애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김영사
500쪽, 1만6000원

책은 제목과 달리 물건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니다. 발명이나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 또는 그 문화적 영향을 파헤친 것도 아니다. 200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환경영웅’으로 선정한 이가 쓴 환경관련 책이다. 단순히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게 아니라 인류의 생활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함을 보여준다.

 책의 메시지, 성격은 책에 인용된 야생환경보호론자인 존 뮤어의 한마디로 귀결된다. “어떤 것이든 그것 하나만 꺼내려 해도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이 함께 당겨져 온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20년간 방글라데시의 쓰레기장에서 도쿄·라스베이거스의 쇼핑몰까지 전세계를 누비며 면 티셔츠, 노트북컴퓨터, 알루미늄캔 등이 무슨 원료로, 어떻게 만들어져 유통되고 소비되며, 버려진 후 어디로 가는지 추적한 지은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이런 시각에 바탕을 두고 쓰인 이 책은 여느 환경책과 다른 장점을 지녔다. 다양한 현장조사도 강점이지만 석유나 물·식량 등 특정대상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경제시스템의 일부로 파악했다. 이렇게 해서 추출·생산·유통·소비·폐기의 5단계로 나눠 환경문제를 파고 들어 설득력을 높였다.

 이를테면 핵심원료인 나무·물·광석을 파고 든 첫 장 ‘추출’에는 종이 이야기가 나온다. 복사용 종이 1톤을 만들기 위해 어딘가의 숲에서 나무 2~3톤이 베어진다. 단순한 종이가 지구의 자연 공기 정화장치이자 자원의 보고인 숲이 줄어들게 하는 주범임을 알 수 있다. 종이를 만드는 데 주요 원료인 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무를 자를 전기톱과 벌목기계, 목재를 운반할 트럭과 기차 등을 만들 금속, 여기 쓰이는 석유, 펄프를 만들 물 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대체로 종이 1톤을 만들려면 각종 다른 자원 98톤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반면 미국 뉴욕시의 쓰레기 40%는 종이다. 종이를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낭비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지적, 식상하다고? 그럼 아예 만들지도, 소비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알루미늄 캔과 PVC의 실체 이야기는 이떤가. 만드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들면서도 유독성 물질을 뿜어낸다는데. 아니면 우리가 ‘일하고-TV 보고-돈 쓰는’ 쳇바퀴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지적은 어떤가. 그리하여 물건들이 점점 더 빠르게 소비되고, 새 것으로 대체되고 버려지는 소비 시스템을 알게 되면 어떤가.

 지구촌 자원의 유한성을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70년대 발표된 ‘로마클럽 보고서’와 맥을 함께하지만 이를 환경문제와 연결시키면서 일상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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