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대 호가 … 300년 된 소나무, 소유권 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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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경업자가 17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의 김씨 문중 묘역에서 60t급 크레인을 동원해 300여 년째 묘역을 지켜온 굽은 소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기원 기자]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시골 마을에 만정헌이라는 고택(古宅)이 있다. 530년 전 지어진 계림 김씨의 종갓집이다. 이곳에서 500m쯤 떨어진 종손 소유의 선산에는 13기의 문중 묘를 지켜온 ‘굽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는 말 그대로다. 조경수로서 소나무의 가치는 피질(皮質:껍데기가 두터워 거북 등과 가깝고 비틀림)·곡(曲:멋있게 굽음)·지장(枝長:키에 비해 줄기가 굵고 가지 길이도 짧음)에 따라 평가한다. 이 소나무는 둘레 230㎝의 거목이면서 3박자를 모두 갖췄다. 조경업자들은 “용이 승천하듯 굽이치는 형세를 지녀 대통령감 조경수”라고 평가했다.

 이 소나무가 300여 년간 지켜온 선산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됐다. 조경수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서로 가져가겠다고 다툼을 벌여서다. ‘줄기가 굽어서 베어 갈 만한 가치도 없다’고 봤던 세간의 시각이 ‘멋지게 굽어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조경수’로 바뀐 게 화근이다.

 조경업자 A씨가 종손(74)에게서 3000만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A씨는 16일 본격적인 반출작업을 시작했다. 60t짜리 크레인 1대, 대형 굴착기 2대, 인부 10여 명을 동원했다. 소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폭 4m, 길이 100m의 도로를 닦았다. 4일에 걸쳐 비용만 2000만원 정도 들어간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소나무 주인을 자처하는 다른 조경업자가 나타난 것이다. B씨는 “7년 전 산주의 사촌에게서 1000만원에 그 소나무를 샀다. 이후 8000만원에 소나무 애호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2000만원의 계약금까지 받았다. 애지중지 관리한 내 나무에 왜 손을 대느냐”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종손은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사촌동생이 소나무를 탐내기에 별 뜻 없이 가져가라고 했을 수는 있겠다”고 말했다. 울주군청은 양측이 맞서자 일단 허가구역 외 산림 훼손을 이유로 18일 반출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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