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소리' 그리는 청각장애인 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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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박광택씨가 수화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2층에서 작품 전시회를 연 청각장애인 화가 박광택(46)씨 .

그의 그림 인생은 30년 전 역시 청각장애인이면서 '한국화의 거장'으로 불리던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며 활짝 피어났다.

"75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운보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제자로 삼아달라고 여섯 차례나 방문했지만 약속을 받지 못하다 일곱 번째 찾아가서야 허락을 얻어냈죠."

부인 이숙민(49)씨가 박씨의 수화를 통역해 전해준 내용이다. 이씨는 대학 시절 박씨에게서 그림을 배운 것을 계기로 부부의 인연을 맺어 20년째 곁을 지켜오고 있다.

박씨는 두 살 때 열병을 크게 앓은 뒤 청력을 잃었다. 부산의 특수학교에서 중학 과정을 밟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운보의 가르침을 받으며 실력이 쑥쑥 늘었다. 75~77년 백양회 공모전에서 세 번 내리 입상했고, 77년 중앙일보 학생미술대전에선 대상을 받았다. 80년 국내 청각장애인으론 처음으로 4년제 대학 미대(동아대 미대)에 입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이 힘들었대요. 친구들이 왜 웃는 지, 무슨 얘기들을 하는 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요."

그 무렵 그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리산만 60번 넘게 다녔다. 산은 한 번도 말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보고, 느끼고, 생각하다 내려오면 됐다.

20년 가까이 산이 들려주던 '침묵의 소리'를 마음속으로 숙성시켜 온 박씨는 99년 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산을 있는 그대로 옮긴 구상화와 '산의 소리'를 담은 추상화를 그렸다. 지난해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화 부문과 비구상화(추상화) 부문에 각각 '산' 작품을 출품해 모두 입선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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