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축소되는 중증외상센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국종 교수

중증 외상을 입고 살아난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치료를 계기로 정부가 당초 전국 6개 권역에 대규모로 마련할 예정이던 중증외상센터가 20곳가량의 소규모 센터 지정으로 대체된다. 국내에 쓸 만한 외상센터가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면 진전됐다고 볼 수 있지만 규모가 축소돼 논란이 일고 있다. <본지 3월 26일자 22면, 4월 8일자 1면>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이 15일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시·도에 한 곳 이상의 중증외상센터(약 20개소)를 지정하기로 했다. 기존 응급의료센터와 중증외상특성화센터를 최대한 활용해 센터당 100억원의 시설확충비와 연간 25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소규모 중증외상센터에는 전용 수술실 2개, 중환자 병상 20개와 입원병상 30개 이상, 전용 혈관조영시설 등을 확충하도록 하고, 외상외과 개설 등 4~5개 분야 전담전문의 신규 채용과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보조인력 인건비가 지원된다. 정부는 다만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이전할 계획인 국립중앙의료원에는 대규모 외상센터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비 350억~450억원을 들여 외상진료와 연구, 인력 양성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중추 기능을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당초 계획된 규모보다는 크게 축소된 내용이다. 복지부 허영주 응급의료과장은 “당초 6개 권역센터에는 센터별로 전용 중환자실 150개 병상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전국에 20곳으로 개수를 늘리면 각 30병상 내외로 분산배치시키게 된다”며 “핵심은 지원 규모인데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석 선장의 주치의를 맡았던 아주대 의대 이국종(42) 교수는 기자들에게 “선진국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큰 규모의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며 “여러 곳에 설립하는 것보다 헬기 이송이 가능한 선에서 집중시켜야 시설과 인력 낭비를 줄이고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계획이 바뀐 것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성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KDI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대형 외상센터를 신축하지 않더라도 기존 시설 중 중증외상 전담센터를 지정해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중증외상센터 건립 문제는 경제성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고난이도 환자를 곧바로 이송할 수 있도록 권역별 최소 한 곳씩의 거점센터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중증외상센터=총상·추락·교통사고 등으로 심한 외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중증외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 365일 24시간 응급수술이 가능하도록 외상전문진료실과 집중치료실, 전용 중환자실, 헬기 이송 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부산대병원에 2012년까지 800억원을 들여 국내 첫 외상센터가 건립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