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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간도 맞히는 초감각 … 수도승처럼 무념무상 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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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20면

권총 국가대표 홍성환 선수가 지난 11일 창원종합사격장에서 과녁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사격 선수 출신들은 대테러 부대(작은 사진) 등 실전 사격 요원들의 교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창원=송봉근 기자

사내아이들에게 총은 장난감 이상의 그 무엇이다. 또래들과 총싸움을 하면서 아이들은 ‘남성성’을 내면화한다. 소꿉장난하며 노는 계집애들과는 다르다는 걸 학습한다. 일종의 젠더 이데올로기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총에 대한 기억은 썩 아름답지 않다. 실탄이 장전된 총을 쏘기까지 과정은 고통스럽다. ‘피가 맺히고, 알이 배이고, 이가 갈리는’ PRI(사격예비훈련)를 거친다. 사격 성적이 나쁘면 고된 얼차려가 기다린다.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9> 대한민국 최고 총잡이들이 사는 법

‘총 쏘는 사나이’들이 요즘 자주 TV와 신문에 등장한다.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했다. 대한민국 청해부대의 UDT 요원들은 한 치 오차 없는 사격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하고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했다.

사격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엘리트 선수들이 하는 건 표적을 정확하게 맞히는 ‘정밀 사격’이다. 정밀 사격을 응용한 ‘실전 사격’은 군·경찰·경호요원 등이 실제 상황에서 상대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이다. 정밀 사격의 기초 없이는 실전에서 제대로 된 사격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격 선수 출신이 군이나 경찰 사격술 교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총잡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들은 사격에서 무엇을 얻고자 할까. 이 물음을 안고 스포츠 오디세이는 국가대표 사격선수들이 훈련 중인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다.
 
“욕심이 생기는 순간 총알은 빗나가”
정밀 사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10m 공기소총의 표적지 한가운데는 작은 점이 찍혀 있다. 이 점의 지름은 0.5㎜다. 사선에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점을 맞혀야 10점이다. 남자는 60발, 여자는 40발을 쏘는데 연습 때는 600점 만점, 400점 만점이 심심찮게 나온다. 실제 대회 결선에서는 이 점을 다시 10등분해 10.0∼10.9점으로 점수를 세분화한다. 벼룩의 간을 맞히는 경쟁이라 할 만하다.

창원종합사격장에서 국가대표 소총팀 차영철(52·KT) 코치를 만났다. 그는 88 서울올림픽 소총 복사 은메달리스트다. 어떻게 극미(極微)의 타깃을 계속 명중할 수 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몸의 흔들림 때문에 정가운데를 맞히기 힘들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근육이 단련되면 몸의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다. 흔들림이 가장 작을 때 격발을 해야 한다. 그 순간은 1초도 되지 않는다. 그 찰나를 잡아 무념무상 속에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직접 총을 쏴 보겠다고 했다. 50m 실탄 소총. 거치대에 총을 올려놓고 조준을 했는데도 조준선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첫 발은 2점이 나왔다. 다음 발은 6점. 세 번째 살짝 방아쇠를 당기니 9점이 찍혔다. ‘별거 아니네’ 싶어 다음 발을 쐈는데 어라, 5점이다.

차 코치가 즉시 지적을 했다. “방아쇠를 당겨야지 생각을 하는 순간 힘이 들어가게 돼 오발을 내게 된다.” 한마디로 마음을 비우라는 얘기다. 23년간 총을 쐈다는 베테랑 공현아(39·부산시청) 선수도 한마디 했다. “사격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만점을 쐈다 하더라도 다음 날 망가질 수 있다. 사격을 하면서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반(半) 도사가 된 기분이다.”

우리나라는 엘리트 선수를 속성으로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사격을 배울 때는 격발 자세로 한 시간을 꼼짝없이 버티는 혹독한 훈련을 거친다. ‘사격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다. 차 코치는 “외국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빨리 높은 수준에 올라가는 걸 보고 놀란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는 사격을 느긋하게 즐기는 선수들을 심리적인 면에서 당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후에는 권총팀 훈련을 지켜봤다. 권총은 총을 몸에 받치고 쏠 수 없기 때문에 정확도가 소총에 비해 떨어진다. 만점 원도 소총보다는 크다. 권총을 잘 쏘기 위해서는 어깨 근육과 팔의 삼각근이 잘 발달되고, 근육의 유연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총이나 아령 등을 들고 1분간 격발 자세를 취한 뒤 내려놓는 훈련을 반복한다. 손상원(국민은행) 코치는 “권총 선수는 타고나는 게 있다. 담대하고 냉정하며 승부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심장이 커야 한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권총 금메달리스트 진종오(KT)가 그런 선수라고 한다. 진종오 덕분에 소총에 몰렸던 사격 선수들이 권총으로 많이 옮겨왔다.

어느 날 갑자기 기량이 확 올라갈 수가 있는지 물었다. 손 코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면 조준선 정렬과 격발이 물 흐르듯 이뤄지는 순간이 있다. 주위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야말로 신들린 듯이 10점을 척척 맞혀 나간다. 선수들 말로 ‘그분이 오신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의 순간 같은 것, 혹은 사회학자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의 경지가 아닐까 싶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쏘기 힘들 것”
홍성환(28·서산시청) 선수는 고교 시절 한 해 7관왕을 휩쓸 정도로 명사수다. 그는 “짧은 시간 집중하는 데는 누구한테도 안 질 자신 있다”고 말해 총 잘 쏘는 비결이 집중력에 있음을 알려줬다. 중학 시절 담력을 키운다고 한밤중 공동묘지도 갔다 왔지만 무섭기만 했지 담이 커진 것 같지는 않다며 웃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 실수를 하면 속이 무척 상한다. 그걸 안으로 삭이고 다음 발을 준비해야 한다. 그럴 땐 ‘내가 지금 도를 닦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밀 사격은 정지 상태에서 정지된 과녁을 쏜다. 반면 실전 사격은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상대를 맞혀야 한다. 홍 선수는 “운동신경이 무뎌 실전 사격은 잘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차영철 코치도 “친구들이 하도 가자고 해서 꿩 사냥을 따라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맞히지 못해 망신당할 뻔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대표선수들도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쏘라고 하면 잘 못 쏠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동안 충북 청원사격장에서 훈련 중 사고가 나서 사격팀 감독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모두들 “총이 그만큼 무섭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 있는 누군가를 쏘아 맞히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총잡이들은 마음 다스리기·내려놓기·깨달음 같은 철학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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